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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지각

페이스북 사진첩을 믿으면 안 되는 이유


글: 인지심리 매니아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이성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한 동안 온라인으로 연락하며 지내다가 실제로 만났다고 치자. 약속장소인 XX까페에 가서 그 사람이 어디 앉아있는지 찾기 시작한다. 단서라고는 온라인에서 봤던 그 사람의 사진첩이 전부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거의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1. 사진은 실물을 반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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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소녀시대를 모르는 외국인이라고 가정하고 네 장의 사진들을 유심히 보자. 나중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태연을 본다면, 이 여성이 사진 속 여성과 동일인물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우리는 특정 인물의 사진들이 그 사람의 Identity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사람인 A의 사진들을 연속해서 봤다면, 우리 뇌에는 A라는 인물이 머리 속에 표상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A의 사진들을 봤는데 B라는 인물이 머리 속에 표상될 수도 있다. 즉, 실물과 사진을 통해 형성된 표상이 불일치할 수 있다. 특히, 사진 속 인물이 처음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Cognition에 재미있는 논문[각주:1]이 실렸다. 이 논문의 연구자들은 첫번쨰 실험에서 영국 참가자들에게 네덜란드의 유명인사 2명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각 인물 당 20장의 사진을 보여주었으므로 참가자는 총 40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그 다음 참가자에게 사진을 인물별로 묶어보라고 지시했다. 만약 참가자가 (처음보는)사진들을 통해 사진속 인물의 Identity를 정확히 식별했다면, 사진들을 2개의 그룹으로 묶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평균 7.5개의 그룹으로 사진을 분류했다. 두 인물을 찍은 사진인데 7명의 사진들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똑같은 사람의 사진이라도 헤어스타일이나 광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참가자와 달리, 네덜란드 사람들은 동일한 실험에서 사진을 정확히 두 그룹으로 묶었다. 이건 당연한 결과다. 김태희와 전지현 사진이 서로 섞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사진을 인물별로 금방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구분을 못 할 수도 있다. 처음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국 연예인의 사진을 정확히 분류할 수 있었지만, 네덜란드 연예인을 잘 모르는 영국 사람은 두 사람의 사진들을 7명의 사진으로 분류해 버린 것이다.

이 논문의 첫번째 교훈은 다음과 같다.
만약 나와 안면이 없는 사람의 얼굴을 그 사람의 사진첩만으로 파악해야 한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다. 페이스북 사진첩만 보고 사람을 덥석 만나러 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인간은 사진만으로 인물의 정확한 표상을 그려낼 수 없는 것 같다.

2. 잘 나온 사진의 효과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잘 생긴 사람은 사진이 못 나와도 잘 생겼고, 못 생긴 사람은 사진이 잘 나와도 못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못 생겨도 사진이 잘 나오면 괜찮게 보이지 않을까? '원판'과 '뽀샵' 중 어느 것이 사진의 매력도에 큰 영향을 미칠까?

이 논문의 저자들은 마지막 실험에서 참가자에게 특정 인물들을 사진을 보여준 후, 매력을 평가하게 했다. 참가자들은 네덜란드의 유명인물 20명의 사진을 본다. 각 인물 당 총 20장의 사진이 제시된다. 참가자는 각 사진을 본 다음 매력있음/매력없음을 판단한다.

분석 결과, 사진의 매력도는 '인물' 뿐만 아니라 '사진'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Rank-Identity r은 사진 속 인물과 매력도(순위별로 정렬)의 상관을 나타낸다. Rank-Image r은 각 사진과 매력도(순위별로 정렬)의 상관을 나타낸다. Fisher's z 점수는 두 분포가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지 말해준다. 두 분포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p<.01 (자세한 분석 방법은 논문 참조)

결국, 매력도는 잘 생기고 못 생긴 사람의 얼굴에 큰 영향을 받지만, 사진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못 생긴 사람도 사진이 한번 잘 나오면 괜찮게 보일 수도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논문의 두번째 교훈은 다음과 같다
못 생긴 자여, 사진을 수 없이 찍어라. 그리고 그 중에 잘 나온 사진을 끊임없이 페이스북에 올려라. 당신의 매력도를 무한히 증가시켜줄 것이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주는 함의
이 논문은 기존 얼굴 재인 연구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존 연구들은 인물 간의 변산만을 고려했다. 참가자가 얼굴을 식별하는 기준은 '인물'이었다. 즉, A 사진을 A로, B 사진을 B로 구분하느냐가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번 논문은 인물 내의 변산이 얼굴 재인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인물이라도 사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연구 결과에 인물 내 변산이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변산을 통제하려면 사진에 대한 '친숙성'이 도움이 될 수 있다(물론 실험에서 친숙성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1. Jenkins, R., et al. Variability in photos of the same face. Cognition (2011), doi:10.1016/ j.cognition.2011.08.00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