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지심리기사/기억/학습

학습자료를 나누면 학습효과가 증가한다


읽어볼 생각이 있는가?




글: 인지심리 매니아

지난 주에 시험이 끝나고 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시험 1~2주 전까지만 해도 방대한 양의 학습자료를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자료를 정리하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자 자료가 서서히 간결해지기 시작했다. 간결해진 자료를 보니까 그나마 공부가 수월했고, 덕분에 백지 답안을 내는 파국적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학습자료의 정리는 시험성적을 좌우하는 요인 중에 하나다. 그런데 학습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도대체 어떤 정리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긴 문장을 짧게 줄이면 공부하기 편할까? 그림을 집어넣으면 공부하기 편할까?
사람들이 많이 채택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분절(segmentation)'이다. 공부할 자료가 여백도 없이 깨알같은 글씨로 무한 발산한다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긴 텍스트를 의미있는 조직 단위로 묶는다. 이를 위해 문단 사이마다 여백을 삽입한다. 그럼, 분절을 한 학습자료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분절의 효과

분절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은 주로 dynamic visualization(예.,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학습 자료)에서 다루어왔다.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넓은 층이 선호하는 학습 자료다. 글만 빼곡히 써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영상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애니메이션의 학습 효과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특히 학습 내용이 어려울수록 애니메이션이나 동영상의 학습 효과는 감소한다. 그 이유는 바로 '분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이 어려운 내용을 설명한 경우, 학생은 이해를 위해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동영상이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영상은 다음 내용을 바로 보여주기 때문에 앞 전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학습 효과가 저조하다.

그래서 '분절'의 효과는 중요하다. 최근에는 플래쉬 등의 기술을 통해 연속적인 학습자료의 분절이 가능해졌다. 최근 학습 자료들은 하나의 개념을 소개한 다음, 학생이 내용을 이해하고 'next'버튼을 누를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렇게 내용을 분절할 경우, 앞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학습심리학 연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각주:1]

그런데, 분절의 효과는 텍스트에서도 나타날까? 긴 텍스트를 의미있는 문단끼리 묶고, 각 문단 사이에 여백을 두면 학습 효과가 증가할까? 또, 이미 정리가 되어 있는 자료를 보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자신이 자료를 직접 분절하는 게 학습에 더 도움이 될까?


실험

최근, 이 주제를 연구한 논문[각주:2]이 Applied Cognitive Psychology에  게재되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확률에 관한 학습자료를 나누어주었다. 이 학습자료는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구하는 절차를 단계별로 소개한다. 참가자 중 일부는 풀이 절차가 blank line으로 구분된 자료를 본 반면, 다른 집단은 blank line 없이 붙여서 적어놓은 자료를 봤다. 또 다른 집단은, blank line 없는 자료를 보되, 자신이 직접 여백을 집어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예)분절이 되 있는 학습자료

‘Together with your friend, you go on a two-day mountain bike trip. Each day the instructor brings five helmets, which each have a different color: blue, green, yellow, red and silver. The helmets are distributed randomly and are given back to the instructor at the end of the day. On both days you get a helmet first and your friend second.
What is the probability that on the first day, you will get the blue helmet and your friend will get the green helmet?’

풀이 절차

1. 헬멧을 고르는 순서..........

2. 복원추출/비복원추출........
.
(풀이 절차가 여백으로 나뉘어져있다).


학습자료를 다 읽고 난 다음, 학생들은 유인물과 유사한 확률 문제를 풀었다.  그 결과, 세 집단 간 점수의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 정리된 자료를 본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동일한 점수를 취득했다. 즉, 학습의 효율성이 높았던 것이다. 또, 자료를 직접 정리한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인지적 노력만 낭비했을 뿐, 학습 성취에 별다른 이점을 얻지 못했다.


Conclusion

결과적으로, 각 내용이 blank line으로 구분된 학습자료가 줄줄이 씌여있는 문장보다 효과적이다. 또, 자신이 자료를 직접 정리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왜 분절이 학습을 효율적으로 만들까? 연구자들은 분할이 중요한 내용을 눈에 잘 띄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인들도 인정했듯이 pause의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책을 보다가도 이해가 잘 안 되면 잠깐 멈추고 생각을 하지 않는가? 분절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백을 만날 때마다 이전 내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


분절은 텍스트로 구성된 학습자료에도 효과가 있지만, 아직 그 원인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 pause와 highlighting 중 어떤 것이 학습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기 위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Notice
이 '분절' 전략은 해당 분야의 초보자에게만 효과가 있는 전략이다. 이미 학습 내용을 다 알고 있는 학생이라면, 분절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1. Ayres & Paas, 2007b; Mayer & Moreno, 2003; Moreno & Mayer, 2007; Wouters, Paas, & Van Merriënboer, 2008 [본문으로]
  2. Spanjers, I. A. E., van Gog, T. and van Merriënboer, J. J. G. (2011), Segmentation of Worked Examples: Effects on Cognitive Load and Learning.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doi: 10.1002/acp.183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