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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주의

빈민가 사람들의 주의력

Posted by 인지심리학 매니아

빈민촌을 지원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재정적 지원이 있을 수도 있고, 정서적 지원이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봉사활동은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빈민촌의 '환경'을 지원하거나 개선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듯하다. 주변 환경을 바꾸는 일은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오늘 소개할 논문은(발표된 지 꽤 됐지만) 빈민가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재정적, 정서적 지원보다 중요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잘 알겠지만, 빈민가는 콘크리트로 지은 집들이 굉장히 좁은 간격을 유지한 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일정한 개인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 또, 집 근처 환경도 열악한 편이다. 주변에 제대로 된 공원을 찾아보기 힘들고, 심지어 나무 한 그루 찾기가 힘들다. 비단 빈민가 뿐만 아니라 아파트나 빌라가 빽빽히 들어선 곳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부 콘크리트 벽만 보일 뿐이고, 눈을 쉬게 해 줄 산림이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attention restoration theory는 인간의 주의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항상 의도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해야 하는 현대인의 주의는 피로한 상태다. 이 피로해진 주의를 휴식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통제로(directed attention) 피로해진 주의를 쉬게 하려면 비의도적인 주의를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환경이 필요하다. 인공물과 달리 자연물은 이런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삭막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필시 주의력에 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주의를 쉬게 할 자연환경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의가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계속해서 지친 상태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연구자들은 지친 주의가 빈민층의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민한 인지능력, 특히 주의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삭막한 환경 속에서 주의력이 고갈된 상태에 놓인 빈민층은 자신의 문제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연구자들은 빈민가(특히 나무같은 자연 환경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실험

연 구자들이 내놓은 가설의 핵심은 자연->주의->삶의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다. 거주 근처 자연환경의 부재는 주의의 피로(mental fatigue)로 이어지고 삶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자연환경, 주의, 삶의 문제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자연환경
연구자들은 나무를 보며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하기 위해 재미있는 측정방법을 생각해냈다.


연 구자들은 건물을 다양한 각도(화살표)에서 촬영한 사진 18장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 각 장면이 얼마나 나무로 우거져 있는지 평정하게 했다. 그 다음 이 평정을 평균하여 10가구의 '녹화(greenness)' 정도를 계산했다. 10가구 중 평균 이상으로 집주변이 푸르다고 평가된 집은 'green'으로 분류되었다.

주의
연 구자들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의 주의를 평가하기 위해 Digit span Backwards(DSB) 과제를 사용하였다. 이 과제는 참가자에게 일련의 숫자를 불러준 후, 들은 숫자를 거꾸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i.e., 1,3,6,4라고 들은 참가자는 4,6,3,1이라고 말해야 한다). 제시되는 숫자는 점점 자리수가 많아지게 되고, 참가자의 주의력 정도는 2번을 정확하게 답한 가장 긴 자리수를 기준으로 한다. 6자리 숫자를 두번 성공했으면 그 사람의 주의력을 6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삶의 문제
연 구자들은 면접자를 통해 각 세대의 삶의 문제를 조사했다. 이들은 참가자의 삶의 목표, 삶의 문제, 중요 의사결정을 말하게 했다. 특히 Ineffective Management of Major Issue(IMMI) 척도를 사용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 못 하고 있는지 측정했다.


결과

연 구자는 먼저 주의력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놀랍게도, 회귀분석을 한 결과 주의력은 IMMI 척도 점수와 부적 상관이 있었다. 즉, 주의가 많이 지쳐있는 사람이 삶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자연환경이 주의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예상대로, 삭막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사는 사람보다 주의력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이번에도 역시 나무가 많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 삶의 문제에 잘 대처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논의

법 학과 시절, 신림동 고시촌에 돌아다닐 일이 많았다. 가끔은 교재를 사기 위해 가기도 하고, 가끔은 아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들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그 곳을 들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삭막함을 느꼈다. 고시원이 다닥다닥 붙은 거리 사이로 지나다닐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언가가 사람을 답답하게 했다.

어쩌면 고시생들은 이 삭막한 환경 탓에 그들의 주의력 중 절반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고시공부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집중력을 요한다. 지칠대로 지친 주의력을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고시생들이 주의력을 회복하기에는 주변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근처에 관악산이 있기는 하지만 공부에 매진하는 고시생들이 멀리까지 행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삭막한 환경 속에서 심신을 쉴 기회를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얼 마전 이정모 교수님의 블로그에서 빈민가 어린아이들의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가난은 물질적 뿐만 아니라 인지적으로도 되물림되어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나무 한 포기, 공원 하나 없는 '환경적' 가난함은 이들이 삶의 문제를 적절히 대처할 수 없게 만들어서 가난의 되물림을 악화시킬 수 있다.

만약 해피빈이 남아있어서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빈민촌의 환경 개선을 돕는 봉사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금전적으로는 미미할지 모르지만, 그 효과는 재정, 교육적 지원과 마찬가지로 클 수 있다.

다음 번 고시촌에 있는 친구를 찾아갈 때는 작은 화분을 사 들고 가야겠다.


Reference
FRANCES E.KUO, COPING WITH POVERTY: Impacts of Environment and Attention in the Inner City, Environment and Behavior, 2001, DOI: 10.1177/00139160121972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