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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주의

생각 버리기 연습 2부 - 실념(失念)을 극복하는 방법



안산갈대습지공원



글: 인지심리 매니아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로 향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심란한 일이 있을 땐 항상 호숫가에 가서 마음을 달래는 연습을 한다.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호숫가에 도착한다. 이 때 자전거를 타면서 최대한 주변 풍경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자전거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나 꽃을 보기도 하고, '조용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 속에 계속 떠오르는 잡념은 라디오처럼 쉴새없이 떠든다. 아름다운 풍경에 집중하기보다 마음 속 고민에 빠져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호숫가에 도착하면, 호숫가 옆 갈대 사이에 있는 작은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지 살펴본다. 지나간 일, 다음 주에 있을 일, 괴로운 일, 생각하기 싫은 일........ 마음 속에 잡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 다음 호숫가 풍경에 집중하는 데 전념한다. 일단 푸른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새가 유유히 날다가 갈대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 뒤에는 소리도 집중해 본다. 그러면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음의 잡음에 가려져 있던 바깥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왜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까?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 감옥은 우리가 바깥 세상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을 방해한다. 푸른빛 호숫가와 유유자적하는 새와 갈대가 있어도, 마음 속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자연 환경 뿐만 아니다.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의 색상, 매일 듣는 음악,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마음 속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무것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모든 감각을 대충대충 느끼고 살아가게 된다.

생각버리기연습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코이케 류노스케 (21세기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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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케 류노스케는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이런 상태를 '실념'이라고 설명했다.

옛날 사람들은 예부터 비오는 소리나 물 떨어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흥미를 느끼며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있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것에서 감각적으로 멋을 느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주위에 격렬한 자극이 넘쳐나고, 그 만큼 사람들도 계속 강한 것들을 원하기 때문에, 미세하고 소소한 자극들을 즐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결국, 주위를 인식하는 능력인 정념을 잃어 버린 상태(실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상태를 '딴생각'이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실념'에서 다시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현재 감각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옷 속의 신체에 의식을 집중해 본다. 그러면 방금 전과는 다른 온도가 느껴지고, 이것 역시 기분 좋은 느낌을 줄 것이다. 하지만 쾌락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 정보 처리를 그만두고 감각 그 자체에 머물며 정신통일을 한 덕분에 얻은 상쾌한 기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느껴진다'와 '느낀다'의 차이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실념 상태에서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의 차이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에 그대로 머무는 것은 무슨 이득이 있는 걸까? 자신의 머리 속을 그냥 백일몽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과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각 속에 빠지는 것. 그것 또한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면 현실과 유리되어 자기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왜 문제가 될까?


Lapse of attention



인지심리 연구는 인간이 사물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연구해 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실수'다.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인지심리학(2009)[각주:1] 교재에는 주의와 실수의 관계를 찰리 채플린의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그가 주연한 모던 타임즈에서 주의와 습관적인 행동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찰리는 작업대에서 계속 나오는 각 쇠판의 두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한다. 어떤 사건 때문에 다소 혼란된 정신 상태에 빠진 찰리는 둥그런 물건만 보면 그것이 사람의 귀든, 단추이든 무조건 조이려 하였다. 찰리의 실수는 습관적인 작업행동이 반복되어 입력정보에 별 주의를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 - 모던 타임즈

Reason(1984)은 평소 반복학습이 충분히 된 행동이 주의를 주지 않아서 잘못 행해지는 경우를 설명했다. 언젠가 아는 사람 한명이 삼각 김밥을 산 다음 내용물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껍질을 먹을 뻔한 적이 있다고 웃으며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실수가 발생하는 이유는 습관적 행위가 외부 피드백을 무시하고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주의를 외부 자극에 충분히 할당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런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삼각 김밥을 쓰레기통에 버린 정도라면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운전시 주의를 충분히 주지 않다가 사람을 쳤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Lapse of attention은 주의의 부재가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념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부정적 사고


부정적 생각



현재 감각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빠질 때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점은 바로 부정적 사고다.

인간은 모든 감각 정보를 접한 다음 그 정보를 자신과 관련된 생각으로 바꾼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보다 '바람이 불어서 내가 감기가 걸리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한다. 새가 날아가는 장면 역시 그대로 느끼지 않고 '나도 저 새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편향은 주변 정보가 자신의 생존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판단하게 하므로, 진화 과정에서 적응적 이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그 감각에 대한 자신의 재해석에 급급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경우, 긍정적 생각보다 부정적 생각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붓다 브레인'의 저자 릭 한센은 그 이유를 진화적 관점에서 찾는다(2011/07/31 - [인지심리학/주의] - (마음챙김)당신의 존재함을 자각하라 참조).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포나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 요소가 나타날지 경계하며 불안해 한다. 어떤 감각이나 자극을 받으면, 그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면 이런 생각을 하기 쉬워진다.


현재 감각에 집중할 때의 이점




현재 감각 자체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감각을 왜곡해서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그것이 감각에 집중하는 첫번째 이점일 것이다.

그 외에, 감각에 집중하면 삶이 풍성해지는 이점도 있다. 인지심리학 연구는 현재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이 몇 가지 이점을 가져다 준다고 설명한다.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지속하면, 지각 체계가 자극에 더욱 민감해진다. 지각이 칼날처럼 예리해지는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지만, 명상과 attentional blink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을 살펴보자[각주:2]. 이 연구는 open-monitoring(현재 일어나는 모든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는)명상이 attentional blink 현상을 완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attnentional blink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아래 영상을 유심히 살펴보자.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글자 속에서 R과 C(R 바로 뒤에 나옴)를 찾아보자.



R 다음에 제시된 C를 보았는가? 아마 R은 찾아냈을지 몰라도 바로 뒤에 제시된 C는 안 보였을 것이다. 우리 주의가 R에 할당되면, 바로 뒤에 제시되는 C는 보이지 않는데, 이 현상을 attentional blink라고 한다. Slagter et al(2007)은 실험 참가자에게 3개월 동안 open-monitoring 명상 훈련을 받게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R 뒤에 바로 제시되는 C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주의력이 향상된 것이다.

도대체 명상이 attentional blink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우리는 두 가지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지난 번에도 설명했듯이, 주의력과 관련해서 주의력이 제한된 용량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과, 연습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후자의 입장에 의할 경우 이 연구 결과는 명상으로 주의력의 용량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주의력이 향상되었으므로, R에 주의가 할당되고 남은 주의력이 C에도 할당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자의 입장을 취해도 결과 해석이 가능하다. 즉, 주의력 자체의 능력에는 변함이 없지만, 명상을 통해 고차적 인지 기능(속으로 독백을 하는 등의 언어적 기능)이 줄어듦에 따라 남는 주의 용량이 지각 체계에 할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든, 명상이 감각을 경험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코이케 류노스케가 '항상 일상의 섬세한 멋을 느끼는 것'이라고 표현한 게 바로 이런 걸까?

이외에도 기존 연구 결과는 명상이 perceptual habituation(반복되는 자극에 대해 감각이 무뎌지는 현상)을 완화한다고 주장한다(Deikman, 1966[각주:3]; Wenger & Bagchi, 1961[각주:4]). 예를 들어 우리 뇌는 반복되는 시계의 초침 소리에 즉각 익숙해져버린다(habituation). 하지만 현재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잃어버렸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 주의를 조금만 집중하면, 익숙해져서 들리지 않았던 초침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습을 많이 할 경우, 초침 소리를 매번 새로운 소리로 듣는 경지에 다다른다. 위에서 언급한 연구의 경우, 명상을 오래 한 사람은 반복적인 자극을 경험해도 habituation에 동반하는 알파파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스님들이 시계 초침을 매번 새로운 소리로 듣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명상은 감각을 풍성하게 하는 것 외에, 오래되어 싫증나거나 익숙해져버린 감각마져 다시 되살리는 것 같다.



가끔은 자신만의 생각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세계에 충실해보자. 항상 반복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환경이 때로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현재 감각을 제대로 느끼는 연습이 필요하다. 작은 소음에서부터 물건들의 색상, 모양, 주변 사람들의 표정, 말소리를 하나하나 신경쓰면서 느껴보자. 그렇게 하면 우리 삶은 보다 colorful해질 것이다.











  1. 인지심리학, 이정모 외, 2009, [본문으로]
  2. Slagter, H. A., Lutz, A., Greischar, L. L., Francis, A. D., Nieuwenhuis, S., Davis, J. M., et al. (2007). Mental training affects distribution of limited brain resources. PLoS Biology, 5(6), e138. [본문으로]
  3. Deikman, A. J. (1966). Implication of experimentally induced contemplative meditation. Journal of Nervous and Mental Disease, 142(2), 101–116. [본문으로]
  4. Wenger, M. A., & Bagchi, B. K. (1961). Studies of autonomic functions in practitioners of yoga in India. Behavioral Science, 6, 312–32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