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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의사결정/추론

일반인과 전문가가 범죄자의 재범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

(영화 '양들의 침묵'의 주인공 한니발 렉터)


글: 인지심리 매니아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당신이 연쇄살인범의 재범 여부를 판단하는 임상 전문가라고 판단해 보자. 범죄자의 사진, 이력, 학력을 훑어보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이 범죄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떤 정보를 근거로 재범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이 문제는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이 분야에서는 일반인과 전문가를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재범율을 예측하는 전문가? 수 년간 훈련을 하면 범인 얼굴만 보고도 다시 범행을 저지를지 예언할 수 있을까?

전문가는 특정 요건을 갖춘 영역에서만 배출된다. 자신의 예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즉각적인 피드백이 주어지는 영역의 경우 전문가가 탄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기예보의 경우 일기예보 전문가가 있을 수 있다. 일기예보의 경우 예보자의 예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다음 날 하늘을 쳐다보면 된다), 예보자는 반복된 피드백을 통해 학습을 하고 전문가가 된다. 즉, 학습이 가능한 분야인 것이다(Learnability, Bolger and Wright, 1994)[각주:1]

문제는 정답이 없어서 학습이 불가능한 경우다. 세계 정세에 관한 예언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자신을 전문가로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예언을 내놓는다. 미국이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것이라는 전망과 곧 회복될 거라는 전망. 하지만 누구 말이 맞을지 알 수 없다. 정확한 피드백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주가 등락폭이 어느 정도 되어야 회복 또는 침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설사 경기가 일시 회복되었더라도 다른 쪽에서 이는 일시적인 회복이며 다시 침체될 거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되는가? 더군다나 이런 피드백은 그 자리에서 관찰되지 않으며, 적어도 수십년의 관찰을 필요로 한다. 결국 정답 없는 싸움이 되고 만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데 정답자가 있을리 없다. 그러니 누구라도 자신을 정답자이자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전문가가 있을 수 없는 분야인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련해서 테틀락의 인터뷰를 다룬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11/08/07 - [인지심리학/의사결정/추론] - 필립 테틀락 - 정치 전문가의 예측은 얼마나 정확한가 을 참조바람)


그럼 범죄자의 재범 여부를 예측하는 것은 두 경우 중 어디에 해당할까? 기존 연구에 의하면, 범인의 재범을 예측하는 일은 불행히도 정답이 없는 영역같아 보인다(e.g., Monahan, 1984[각주:2]; Quinsey, Harris, Rice, & Cormier, 1998[각주:3]). 하지만 재범 여부가 예측불가능하다고 해서 전문가의 판단 없이 형을 집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풀어준 범인이 또 다시 살인을 하면 어떻게 할까? 한니발 렉터 박사가 다시 길거리를 배회한다면?(물론 렉터 박사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재범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반대로, 재범의 의지가 없는 범인을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감방에 영원히 가두는 것은 어떤가? 이 분야에는 어쨌든 전문가가 꼭 필요할 듯 싶다.

Murray et al(2011)[각주:4]은 위험 행동을 예측하는 전문가가 존재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 우선 그들은 일반인과 전문가, 준전문가가 범죄자의 재범 여부를 판단할 때 차이점을 보이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또, 이들이 재범 여부를 판단할 때 범죄자의 내부적(예: 고의나 동기 등), 외부적 요인(예: 어쩔 수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하는지 여부도 조사했다.

연구자들이 진행한 실험은 3 X 3 X 2 혼합 설계로 구성되었다. 독립 변인은 전문성의 수준(일반인/준전문가/전문가)과 시나리오(살인,폭행,무장강도), 귀인(내귀인/외귀인)이었다. 종속변인은 참가자의 rating 점수(양형, 범죄자의 책임, 범죄자의 위험성 등)다. 

연구자들은 일반인과 준전문가(법심리학을 전공중인 학생), 전문가(법정에서 실제 일하고 있는 임상 전문가)를 뽑은 다음, 3가지 시나리오(살인, 폭행, 무장강도)를 보여줬다. 이 때 시나리오의 내용을 조작해서,  범죄자의 범행을 내부적 또는 외부적 원인 탓으로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시나리오를 다 읽은 다음, 유인물 마지막에 있는 질문지를 작성했다. 질문지는 범죄자의 어느 정도의 벌을 받아야 하는지, 범죄자에게 얼만큼 책임이 있는지, 범죄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등을 물었다.

요인이 많은 만큼 실험 결과도 다소 복잡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결과만을 뽑아서 정리했다.


 


두 그래프 중 위에 있는 그래프를 주목해 보자. 위 그래프는 각 집단이 범죄자의 책임여부를 판단할 때 내/외귀인에 영향을 받은 정도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문가가 일반인과 비슷한 판단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전문가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외부적 요인보다 내부적 요인(예: 고의)으로 저지른 범행에 큰 책임을 물었다. 마치 전문가가 일반인처럼 내외부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아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준전문가만이 유일하게 내/외부 요인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다. 다른 질문에 대한 평정점수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결국 전문가나 일반인이나 똑같은 판단을 내린다면, 전문가의 존재 이유가 없다. 하지만 판단을 똑같이 내린다고 해서 판단을 내리는 과정도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일반인은 문제를 접할 때 문제 해결에 필요치 않은 단서들에 휘둘리거나 휴리스틱(어림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나면, 자신의 직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될 무렵이면 휴리스틱을 다시 사용하게 된다. 이 때 전문가는 준전문가가 활용하지 못하는 내외부적 요인들을 문제해결 시 고려하는 능력을 지닌다.  따라서 의사결정이나 예측의 질은 일반인이나 준전문가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범인의 재범 여부를 판단할 때는 누구의 판단이 더 정확할까? 내외부적 요인을 배제하고 객관적 기준에 근거한 준전문가의 판단? 아니면 상황적 요인을 고려하는 전문가의 판단? 두 사람 중 누구의 판단이 더 정확할지는 알 수 없다. 이를 알려면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범인의 재범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반인과 준전문가는 최소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1. Bolger, F., & Wright, G. (1994). Assessing the quality of expert judgement. Decision Support Systems, 11, 1–24. doi:10.1016/0167-9236(94)90061-2 [본문으로]
  2. Monahan, J. (1984). The prediction of violence behaviour: Toward a second generation of theory and policy.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41, 10–15. Retrieved from http://ajp.psychiatryonline.org/index.dtl [본문으로]
  3. Quinsey, V. L., Harris, G. T., Rice, M. E., & Cormier, C. A. (1998). Violent offenders: Appraising and managing risk.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본문으로]
  4. Murray, Thomson, Cooke, Charles, Influencing expert judgment: Attributions of crime causality, Legal and Criminological Psychology (2011), 16, 126–14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