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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종교 본능


필자가 항상 앉아있는 벤치. Image : http://cafe.naver.com/canon450dclub/206678




글 : 인지심리 매니아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한 주일 동안 갑갑한 회사 건물에 갇혀 지내다가 탁 트인 풍경을 보니까 가슴이 시원했다. 


호숫가 주변을 돌면서 아이들과 강아지 구경도 하고, 해바라기랑 코스모스도 구경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갈대습지공원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벤치에 앉아서 흘러가는 물을 보고 있으니까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 추억, 쌓인 일들, 장래 계획…. 그러다 문득 ‘나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바라보던 중 ‘강물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약간의 자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강물이 목적 없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보면서 필자도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필자는 호숫가에서 했던 두 가지 질문이 모두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질문에 답해줄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제시 베링의 저서 ‘종교 본능’이다.




종교 본능

저자
제시 베링 지음
출판사
필로소픽 | 2012-04-0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신의 탄생은 ‘마음이론’에 있다!나와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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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의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 낳는 부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마음 이론이란 자신이나 타인의 신념, 고의, 욕망 등을 파악하거나 구분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마음 이론을 사용한다. 우리는 ‘저 사람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했을까?’,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와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 끊임없이 추측을 하며 살아간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필자가 했던 질문 두 가지는 마음 이론이 낳은 부작용이다. 우선, 내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마음 이론은 모든 현상에 ‘의도나 목적’이 숨어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발전하기 쉽다. 인간의 삶 역시 목적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이론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삶의 목적을 찾게 한다. 저자는 이런 욕망이 마음 이론의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운명, 그리고 본질적 목적이라는 관념은 무해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존재에 목적기능 추론을 적용하는 것은 때로는 어처구니없게 일그러지는 상태까지 나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추론은 순진한 젊은 신병들이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서도록 꾀는 핵심 전술 중 하나이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다면, 신이 관절염 걸린 할머니를 불구로 만든다는 끔찍한 목적을 위해 자기를 창조했다고 믿거나, 사제폭탄을 던져 옹알이하는 아기의 연한 머리를 날려버린다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자기를, 오직 자기만을 설계했다고 믿지 않으리라.’


종교 본능 - 94p


둘째, ‘강물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겠지’라는 질문 역시 잘못된 질문이다. 저자는 마음 이론이 자연 현상에 투영될 경우, 자연 역시 어떤 의도나 목적에 의해 움직인다는 착각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보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데보라 켈레먼의 연구[각주:1]를 인용하여 이런 오류를 지적했다. 이 연구에서 7~8세의 아동들은 산이 왜 존재하는지 묻는 질문에 ‘동물들이 오를 곳을 주기 위해서’라는 등 목적기능 설명을 선호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목적기능 설명보다 기계론적 설명을 선호하긴 하지만, 성인 역시 목적기능 설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강물은 아무 목적 없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지만, 필자는 강물에게 인격이 있고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싶어한다고 추측했던 것이다.


‘종교 본능’은 철학, 인지과학, 심리학 연구를 통해 마음이론이 어떤 부작용들을 낳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그 동안 진화심리학과 생물학에서 주장했던 이론들과 다소 차별된 주장을 하고 있다. 기존의 학설이 오류 관리 이론이나 공포 관리 이론 등을 통해 인간이 신과 내세를 믿는 이유를 설명하는 반면, 저자는 마음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1. Are Children "Intuitive Theists"? Reasoning about purpose and design in nature. Kelemen, Deborah Psychological Science, Vol 15(5), May 2004, 295-30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