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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인지심리 칼럼

2013년 3월 토요인지모임(토인모) 후기



2013.3.16 토요인지모임. 장소: 서강대 정하상관. 발표자: 박도영 책임님. 사진: 인지심리 매니아.





글 : 인지심리 매니아


2013년 3월 16일 서강대에서 열린 토인모 다녀왔다. 이번 모임은 ‘Auditory Interface Design for Product’라는 주제로 박도영 책임연구원(현대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님이 발표를 맡아주셨다.


최근 UX 분야는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적 UI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세미나에 참석하신 것 같다. 인지심리와 음악을 함께 공부한 필자도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다.


세미나의 초점은 Sonification의 개념과 디자인 과정에 맞추어졌다. 위키피디아 정의에 의하면, Sonification은 ‘정보 전달 또는 데이터를 지각하기 위한 비언어적인 소리의 활용'를 의미한다. 즉, 말을 하지 않고도 소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거나 데이터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박도영 책임님은 Sonification이 세 가지 과정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Rendering sound’는 시급성(Urgency)과 중요성(Importance)을 소리의 특성(음높이, 음색, 음량)에 매핑하는 단계다. 예를 들어, 필자의 아버지가 소유한 승용차는 후진 시 물체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경고음의 비트수가 점점 증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지해야 한다는 시급성이 높아지면 비트도 함께 증가하도록 매핑된 경우다.


두번째로, 발생한 소리가 청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단계다. 소리는 정보(피드백, 알림, 회사 브랜드, 엔터테이닝)나 심미(아름다움, 즐거움, 감동이나 인상, 차별화)를 전달할 수 있다.


세번째로, 청자가 소리를 듣고 정보나 미적 가치를 ‘이해’하는 단계다. 만약 청자가 정보를 올바로 이해했다면 Sonification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세미나는 auditory interface를 활용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또, 도형을 음으로 표현하는 재미난 실험을 즉석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건반을 보면 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필자가 제일 먼저 나섰는데, 다른 분들도 필자의 소리에 공감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세미나를 듣는 동안, 필자는 발표 주제와 관련된 인지심리학 이론이나 연구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소리가 추상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단순한 소리가 정보가를 가질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면 ‘위급’한 상황이라는 사실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리가 그보다 훨씬 복잡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할 수 있을까? 가령, 소리가 동물이나 물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소리의 경우는 아니지만, ‘음악'이 사물을 전달할 수 있는지 연구한 사례가 있다. ‘Cognitive Daily’라는 블로그의 저자이자 인지심리학자인 Dave Munger는 블로그를 통해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었다. 블로그 독자들을 대상으로 클래식 곡(바람이나 바다처럼 특정 대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들의 일부를 들려준 다음, 곡들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물어본 것이다. 이 때 응답자는 ‘아름답다' 등의 형용사를 쓸 수 없으며 ‘강'처럼 구체적인 명사를 이용하여 응답을 해야 한다.


연구자는 응답자가 주제를 정확히 맞추었을 경우 2점, 주제와 유사한 사물을 언급한 경우 1점, 전혀 다른 사물을 언급한 경우 0점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동물의 사육제 중 ‘코끼리를 들은 사람이 ‘코끼리’라고 대답하면 2점, ‘하마'라고 대답하면 1점, ‘새'라고 대답했으면 0점을 받는다.


그런데 실험 결과 응답자의 스코어는 전반적으로 낮았다. 아래 그래프는 네티즌들의 응답 결과다.



Image : Cogitive Daily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 전공자들의 평균마저 1점을 넘지 못했다. 참가자 대부분 주제와 관련 없는 사물을 지칭한 것이다. 이 온라인 실험 결과에 대해선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 가능성은 생상스가 코끼리에 해당하는 음악을 제대로 매핑하지 못한 경우다. 이 경우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하지만 애시당초 음악이 코끼리같은 복잡한 개념을 표현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음악이 전달하는 정보의 복잡성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 결과가 소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까? 소리는 어느 수준의 복잡성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소리가 도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색깔은? 코끼리는? 


둘째로, 소리에 대한 선호도 조사가 매번 실패로 끝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심리학 문헌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독립 변인 외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개입(혼입)할 여지가 있다. 한 연구의 경우 온라인을 통해 음악 투표를 실시했는데, 참가자들이 투표 초반 많은 표를 받은 음악에 몰표를 주면서 특정 음악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음악의 특성보다 곡에 대한 타인의 반응이 자신의 선호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외에도 음악의 제시 순서, 환경 등에 따라 실험 결과는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 auditory interface를 개발하기 위한 서베이가 전체 사용자의 의견을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세미나 후에 이어진 식사 시간에서 발표자 및 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누어봤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음악이라는 분야에 과학적 검증을 거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모한 시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청각적 UI 설계의 과학적 검증을 회의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UX는 디자이너의 인사이트와 과학이 어우러지는 분야다. 때로 이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 뇌의 System 1과 System 2가 갈등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디자이너의 인사이트는 빠른 시간에 유저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반면 서베이나 실험 등 과학적 검증은 느리지만 인사이트가 저지르는 오류를 바로잡아줄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두 가지 방법을 잘 조화시킬 때 사용자의 경험도 최적화될 것이다.



끝으로, 필자의 블로그를 보고 토인모를 찾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필자가 토인모의 부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토인모는 매달 세번째 주 서강대에서 열린다.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방문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