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Wired

번역: 인지심리 매니아


스티브 잡스의 일화들은 그가 화를 잘 내며, 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고 묘사한다. 몇 달 전, 아담 라신스키는 포춘지 기사를 통해 1 Infinite Loop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묘사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2008년 여름, 애플은 3G iPhone을 처음 출시했다. 이와 동시에 애플은 MobileMe를 선보였다. MobileMe는 휴대폰과 이메일을 동기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MobileMe은 쓸모가 없었다. 사용자들은 이메일이 사라지거나, 동기화 시 오류가 발생한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아이폰을 선택했지만, MobileMe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쓸모없음을 용납하지 않았다. 출시 이벤트 직후, 그는 MobileMe팀을 애플 건물 Building 4의 Town Hall auditorium으로 소환했다. 그 미팅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잡스는 까만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고 손을 꽉 움켜쥔 체 걸어들어와서 한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MobileMe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 졌는지 누가 이야기 좀 해 줄래요?" 누군가가 답변을 하자마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So why the fuck doesn't it do that?"

이후 30분 동안 잡스는 사람들을 몹시 꾸짖었다. "당신들은 애플의 명성을 더럽혔습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 명성을 떨어뜨리는 자를 증오해야 합니다." 대중적인 망신이 잡스를 더욱 열받게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gadget 컬럼니스트인 Walt Mossberg는 MobileMe를 혹평했다. "우리 친구인 Mossberg는 더 이상 우리에게 좋은 기사를 써 주지 않을 겁니다."라고 잡스는 말했다. 잡스는 그 자리에서 새 임원을 임명했다. 

잔인하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분노는 잡스의 경영 전략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실패와 직면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고 부정적 피드백에도 불러서지 않았다. 그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회사 내에 퉁명스러운 문화가 스며들게 했다. 애플의 디자이너인 Jonathan Ive는 그룹 미팅의 모토가 "잔인하게 비판적'이었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분노와 비판의 조장은 좋지 않은 생각 같아 보인다. 우리는 그룹 협업 시 손발이 잘 맞고 서로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브레인스토밍을 예로 들어 보자. 브레인스토밍은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테크닉이다. 광고 회사인 BBDO의 창업 파트너인 알렉스 오스본은 1940년대 후반 브레인스토밍의 장점을 그의 베스트셀러에서 잘 설명했다. (그는 브레인스토밍이 집단의 창의적 결과물을 두 배로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비판의 부재라고 말했다. 오스본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받을 부정적 피드백을 염려할 경우 브레인스토밍에 실패한다. "창의성은 아주 미묘해서 칭찬을 통해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반면 좌절은 꽃을 시들게 만듭니다." 오스본은 Your Creative Power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큰 실수일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실망이나 불만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무언가 효과를 봤을 수도 있다. Matthiis Baas와 Carsten De Drue는 최근 Th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새로운 논문을 소개했다. 그들의 첫번째 실험은 간단하다. 이 실험은 분노가 창의적 과제에서 "구조화되지 않은 생각(unstructured thinking)"을 촉진함을 보여줬다. 두번째 실험은 자연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브레인스토밍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참가자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번에도 분노를 느낀 참가자는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물론 이는 분노가 만병통치약이거나 현명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첫째, 분노는 소진적이고 "자원을 고갈"시킨다. 화난 참가자가 초반에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그들의 수행은 급격히 떨어졌다. 아이디어 생성 세션이 끝날 무렵에 그들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따.

왜 분노가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 해답은 아직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기분이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분노가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면 피상적인 자유 연상을 뛰어넘어서 보다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반면, 기분이 좋거나 중립인 상태라면 친숙하지 않은 가능성을 생각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고,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떄 생기는 위험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비판의 부재는 우리를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게 한다. 그래서 분노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부정적 기분이 놀라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슬픔을 경험한 참가자는 창의적 생성 과제에서 수행이 저조했다. 하지만 기존 연구는 슬픔이 창의성을 지속시켜서 오랫동안 노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즉, 우울이 단기적으로는 나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Modupe Akinola의 "The Dark Side of Creatvity"라는 최근 논문을 생각해 보자. 실험 설정은 매우 영리했다: 그녀는 참가자에게 자신의 원하는 직업에 대해 짧은 발표를 하게 했다. 학생들은 무선적으로 긍정적 또는 부정적 피드백 조건에 할당되었다. 긍정적 조건의 경우 발표할 때 청중이 웃거나 고개를 끄덕였고, 부정적 조건의 경우 청중이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발표가 끝난 다음, 참가자들은 풀과 종이, 펠트를 이용해 콜라주를 만들었다. 그 다음 전문 예술가가 이 콜라주를 창의성의 여러 측면에서 평가했다.

피드백은 참가자의 기분에 영향을 미쳤다. 발표 때 미소를 봤던 사람은 발표 직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인상을 찌푸렸을 때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부정적인 피드백 조건의 참가자가 콜라주를 더 예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더 나은 예술을 낳았다. Akinola는 슬픔이 참가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창의적 도전에 더 매달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젼 연구는 부정적 피드백이 뒤이은 노력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보였다. 이 경우 과제가 너무 어렵게 지각되지 않아야 한다(Locke & Latham, 1990). 이는 부정적 경험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경우와 일치한다. 부정적 정서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창의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긍정적 기분을 겪으면 창의적 과제가 달성되었으며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데이터는 조금 우울하다. 나는 오스본이 믿었듯이 즐겁고 자유로울 때 잘 돌아가는 뇌를 가진 것 같다. 불행히도, 우리 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는 insight puzzle의 수행을 향상시킨다. 행복이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다.)
나는 작가인 J.M Coetzee의 말이 정말일까봐 걱정된다: 예술을 낳을 때는 항상 고통으로 향해라.

관련 글(분노가 현명한 의사결정을 낳는다?)

 

 

Posted by 인지심리 매니아


먼저 다음 투표를 해 본 다음 아래 글을 읽어보자.



배 우자의 잔소리는 누구 귀에든 따갑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잔소리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상대편이 목소리의 강도를 점점 높이지만, 그것 또한 곧 적응되어 버린다. 나중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도의 경지에 다다른다. 결국 상대방은 점점 큰소리를 내게 되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렇게 화내는 목소리에 적응(Adaptation)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2010년 Cognition에 게재된 한 논문이 이런 현상의 인지적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논문의 주장은 특정 감정이 실린 목소리에 계속 노출될 경우, 다른 감각기관과 마찬가지로 적응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 시각적 적응과 aftereffects, 잔상에 대해선 익히 알려져 있다. 빨간 색을 계속 보고 있다가 다른 곳을 쳐다보면 녹색잔상이 계속 남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색을 지각하는 세포가 계속적인 자극 노출에 피로해지지만 상응하는 반대 세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즉 대비 효과가 나타난다. 이는 색깔에 국한되지 않고 얼굴 같은 고차원적 시각 자극에도 적용된다. 홀쭉한 얼굴을 보고 있다가 큰바위 얼굴을 쳐다보면, 실제 얼굴보다 더 큰 얼굴처럼 지각하는 것이다.


그 런데 청각의 경우에도 이런 대비효과가 나타날까? 저차원 수준에서는 이런 대비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Schweinberger et al. (2008)의 실험에서  남성의 목소리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은, 남녀 목소리를 섞어서(몰핑이라고 한다) 성별 구분이 어려운 음성 자극을 여성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다 고차원적인 잔상효과를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 특히 감정이 섞인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해당 감정에 순응하는 지는 알 수 없다.






연 구자들은 이런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들은 분노 또는 공포에 섞인 목소리에 사람들을 적응시킨다음 애매모호한 자극을 정서적 범주로 분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의 가설이 맞다면, 분노섞인 목소리에 오래 적응된 사람은 이 자극을 공포에 섞인 목소리로 판단할 것이다(말 그대로 분노에 적응되어서 왠만한 분노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또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 험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특정 정서에 적응시키지 않고 애매한 자극(컴퓨터로 분노-공포 목소리를 합성했다. 5%/95%, 20%/80%..... 95%/5%의 비율로 섞어서 총 7개의 음성 파일을 만들었다)이 분노인지 공포인지 판단하게 했다. 두번째 실험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번은 분노 또는 공포에 섞인 목소리에 네번씩 노출된 다음, 애매한 자극의 정서적 범주를 판단하게 했다. 다른 한 실험은 분노나 공포섞인 목소리를 조금 과장되게 만들어서 정서적 각성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실험조건


통제조건

실험1: 정서적응(분노/공포) X 성별(남/여) = 4조건

실험2: 정서적응(분노/공포) X 성별(남/여) X 자극의 종류(일반/과장된 목소리) = 8조건



실험결과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각 그래프에 있는 별표모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별표는 PSE(The point of subjective equality)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분노-공포가 반반씩 섞인 것 같다고 판단한 지점이다. 왼쪽 큰 그래프를 보자. 공포에 섞인 목소리에 계속적으로 노출된 사람의 PSE는 통제집단(검은색)의 경우보다 좌표상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 이는 애매한 자극에 공포가 섞인 비율이 65%는 되야 반반이라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공포에 적응이 되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명백히 공포라고 판단되지 않는 한, 분노라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빨간 색 별표는 검은색 별표보다 왼쪽에 치우쳐 있다. 분노에 적응된 사람은 분노-공포 비율이 반반씩 섞인 경우 그 목소리를 공포라고 판단한다. 이 사람이 자극을 분노라고 판단하려면 최소 분노가 60% 정도는 섞여야 하는 것이다.


추 가적인 분석에서는 정서적으로 과장된 목소리가 일반적인 정서적 목소리에 비해 PSE간 차이를 더 크게 만들지 않았다. 이는 목소리의 음향학적 수준을 조작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적응 정도가 달라지지 않음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 인간이 정서에 적응되는 것은 저차원 수준이 아닌 고차원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쉽게,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화내는 것과 작은 목소리로 화내는 것 둘다 분노에 적응시키는 효과는 똑같다는 것이다. 이 목소리가 '화났다'라는 생각, 즉 고차원적 인지에서 적응이 일어난다고 저자들은 말하는 것이다).



결론


이 논문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우리는 의사소통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보다 내 심정을 잘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나의 분노나 공포에 금방 무뎌져 버린다. 

소리만 지를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대화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의문점


긍정적 감정의 경우는 어떤가? 행복한 목소리에도 적응되면 무뎌질까?

음악으로 유발되는 정서 또한 적응되면 무뎌질까?





Reference

Bestelmeyer, P. E. G., et al. Auditory adaptation in vocal affect perception. Cognition (2010), doi:10.1016/
j.cognition.2010.0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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