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인지심리 매니아


인간은 환경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한다. 우리는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고,. 빵을 사기 위해 가게까지 걸어가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서 일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결과를 야기한다는 주관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를 행위주체감(sense of agency, SoA)이라고 한다.


만약 행위주체감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의 행동이 환경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상상해보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삶이 어떻게 변할까? 무엇 하나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고 만사가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이 없다. 행위 주체감을 경험하지 못하는 삶은 지옥이 될 것이다. 


행위주체감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노력(effort)이 행위주체감에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된 편이다. 인간은 어떤 일에 노력을 기울이면 그에 따라 환경도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이 믿음은 심지어 행위와 결과 간 관련이 없는 경우에도 유지된다. 심리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주사위를 던질 때 공을 들이면 자신이 원하는 숫자를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 또, 종교적 의식을 치를 때도 정성을 들일수록 효험이 증가한다고 생각한다(이전 글 참조). 자신의 행동이 환경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노력이 결과를 바꾼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행위자는 노력을 들이는 과정에서 행위주체감을 경험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멘느 드 비랑(Maine de Biran)은 인간이 ‘노력'이라는 단서를 통해 자신과 환경 간 상호작용을 가늠한다고 말했다.


2013년 Demanet 등은 위와 같은 철학적 주장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Intentional Binding(IB) 패러다임을 이용한 연구[각주:1]를 진행했다. Intentional Binding이란 자발적 행동이 감각적 결과를 야기했을 때, 행위자가 두 사건의 시간적 간격을 실제보다 짧게 지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버튼을 누르고 약 1초 뒤에 ‘삐’하는 소리가 들렸다면, 행위자는 버튼을 누른 시점과 소리가 들린 시점 간 사이를 실제보다 훨씬 짧게 지각한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Intentional Binding는 행위주체감을 반영하는 척도가 될 수 있으며, 이번 연구 역시 IB를 통해 행위주체감을 측정하고자 했다.



실험은 아래 그림과 같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는 컴퓨터 화면 상에서 원 운동을 하는 조그마한 점을 응시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면 250ms 뒤에 600Hz의 순음(‘삐’하는 소리)이 들린다. 화면의 점은 버튼을 누른 시점부터 250ms+1,000~2,000ms 까지 원운동을 지속하다가 사라진다. 참가자는 버튼을 누를 당시 점의 위치와 소리가 들린 시점의 점 위치를 클릭하면 된다. 반면 통제 집단의 경우 버튼만 누르거나 순음만 들은 후, 해당 시점의 점 위치를 클릭한다. 그리고 통제 집단의 응답 - 처치 집단의 응답 = 판단 오류 점수를 계산했다.



실험 과정. 논문에서 인용



연구자들은 ‘노력’이라는 요인을 조작하기 위해 라텍스 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High effort 집단의 참가자들은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장력이 쎈 라텍스 밴드를 잡아당기고 있어야 한다. 반면, Low effort 집단의 경우 장력이 약한 밴드를 사용했다.



논문에서 인용.



만약 연구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처치 집단은 통제 집단보다 버튼 누른 시간을 다소 늦게, 소리가 들린 시간은 다소 앞서서 판단할 것이다(IB effect). 또, 장력이 쎈 밴드를 잡아당기고 있던 집단에서 이런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노력을 많이 들일수록 IB effect, 즉 행위주체감이 커질 것이다). 실험 결과는 연구자들의 예상과 일치했다. 



실험 결과. 논문에서 인용



노력은 우리 삶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든 그렇지 않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어쩌면 착각)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1. Demanet, J., Muhle-Karbe, P. S., Lynn, M. T., Blotenberg, I., & Brass, M. (2013). Power to the will: How exerting physical effort boosts the sense of agency. Cognition, 129(3), 574-5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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