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지심리 매니아
평소 클래식을 좋아하던 필자는 어느 날 쇼팽의 ‘추격’이라는 곡을 듣고 나서 큰 감명을 받았다. 연주자의 손가락이 피아노 위를 날아다닐 때마다 경이로운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그만 반한 것이다(쇼팽의 곡은 언제나 그렇지만). 연주자의 우아한 손놀림에 반해서 동영상을 수십번이나 반복해서 보던 중, 문득 ‘저 곡을 칠 수만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부터 이 말도 안되는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에도 삽입되었던 이 곡은(Etude 10-4) 연주하기가 정말 까다롭다. 선생님의 지도도 없이 초보자가 이런 대곡을 연주하겠다는 포부는 무모해보였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연습에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간신히 메트로늄으로 120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연주의 정확성은 형편없었다. 슈베르트 즉흥곡 Op 90 No. 3을 완성하고 No. 2를 연습할 동안에도 쇼팽의 곡은 진전이 없었다. 다른 작품 2개를 완성할 동안 쇼팽의 곡 하나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어느 날, 무작정 연습을 하던 필자는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왜 연습을 해도 효과가 없는 거지?” 그때부터 무작정 건반을 두들기는 대신, 연습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어떤 부분에서 연주가 막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유난히 연주하기 어려운 특정 소절을 알아냈다. 그 다음 해당 부분을 연주하기 어려운 이유가 뭔지 고민해 봤다. 이유를 찾았다면 그 부분을 잘 연주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야 할지도 함께 생각해봤다.
그 때부터 어떤 구절에서 손목 스냅을 쓸지, 힘이 약한 약지를 어떻게 보완할지, 어떤 구절이 실수를 유발하는지 의식하면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고군분투한 끝에, 연주 상태는 전보다 나아졌다. 아직도 원곡과 판이하게 다르지만, 두 배 정도 느리게 치면 그나마 정확히 칠 수 있다.
초보자가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악기를 배우는 것은 고된 일이다. 초보자는 전문가에 비해 연습 방법이 서툴기 때문에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심지어 잘못된 습관을 습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불쌍한 사람들의 연습 효과를 향상시킬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
메타인지 능력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음악에서 말하는 메타인지는 곡의 특성이나 자신의 장단점, 어려운 소절을 만났을 때의 대응 전략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는 자신이 어떤 구절에 강하고 어떤 기술에 약한지 잘 알고 있다. 또, 문제를 만났을 때 거기에 알맞은 대응전략을 신속히 생각해낸다. 만약 초보자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메타인지 능력을 활용한다면 외부의 피드백 없이도 자신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고, 연습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정말 그럴까?
Applied Cognitive Psychology에 실린 한 연구 1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연구자들은
음악을 전공하는 4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전통적 교수법과 메타인지를 강조하는 교수법을 병행해서 실시했다. Order 1에 속한 학생들은 메타인지 교수법을 먼저 접한 다음, 나중에
전통적 교수법으로 교육받은 반면, Order 2에 속한 학생들은 반대 순서로 교육을 받았다.
메타인지를 강조하는 수업은 아래 그림처럼 네 단계를 강조한다. 계획하기 단계에서는 연습하려는 곡의 특징, 패턴, 어려운 부분등을 파악한다. 그 다음 연주 단계에서는 자신의 연주를 귀기울여 들을 것을 강조한다. 평가 단계에선 자신의 연주에서 장단점을 파악하고 연주에서 사용한 전략을 되짚어본다. 마지막으로 새 전략 단계에선 효율적이지 않은 전략 대신 새로운 전략을 모색한다. 이 교수법의 핵심은 학생이 자신의 연주상태를 스스로 ‘모니터링’하게 하는 데 있다.
실험 결과 메타인지 교육의 우수성이 입증됐다. 첫 단계(Time 1)만 놓고 비교해 봤을 때, 메타인지 교육을 받은 학생은 전통적 교수법으로 배운 학생보다 리듬 면에서 우수했다. 하지만 두번째 단계(Time 2)에서는 차이가 사라졌다. 즉, 모든 집단이 메타인지 교육을 받은 다음부터는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또, 전통적 교수법을 먼저 접한 다음 나중에 메타인지 교육을 받은
학생은 수행이 큰 폭으로 향상했다. 이는 메타인지 교육이 일반 교수법보다 우수함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메타인지 교육을 받은 학생의 경우 나중에 전통적 교수법으로 배우더라도 초반에 얻었던 교육의 효과를
잃지 않았다.
메타인지는 전문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닌 것 같다. 초보자나 전공생이라도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모니터링한다면 연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음악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 일반인의 경우 연습량이 매우 적은 편인 만큼, 메타인지를 적극 활용해서 효율을 높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 MEGHAN BATHGATE, JUDITH SIMS-KNIGHT, CHRISTIAN SCHUNN, Thoughts on Thinking: Engaging Novice Music Students in Metacognition,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20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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