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인지심리 매니아


지난 19일 아침, 필자는 ‘마음과 뇌'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에서 고등과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마음과 뇌'라는 주제를 놓고 강연을 했다. 그 중 흥미로운 내용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글로 적어 봤다(발표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서 글에 오류가 있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고등과학원 '마음과 뇌' 컨퍼런스. 사진 : 인지심리 매니아



첫 시간은 카이스트의 Christopher D. Fiorillo 교수가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뉴런을 연구할 때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또 뇌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는지 설명하고자 했다.


기존 물리학이나 심리학은 대상을 연구할 때 대상에게 주어지는 input이나 output을 관찰했다(심리학에서는 스키너가 대표적일 것이다). 하지만 발표자는 뉴런을 관찰 ‘대상(object)’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지양하고자 했다. 대신 뉴런을 인간과 같은 ‘관찰자(observer)’로 보는 관점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대상이 아닌 주체적 정보처리자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뉴런을 연구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뉴런이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면 물리학 실험 같은 기존 연구 방식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대신,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뉴런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발표자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이 인간 뿐만 아니라 뉴런 연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발표자는 뇌라는 물리적 구조물이 어떻게 다른 물리적 구조물(예,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뇌는 환경으로부터 정보(확률)를 얻고 이를 통해 예측, 추론을 하며, 이런 정보처리 방식은 베이지안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더불어 그는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이 각각의 관찰자 역할을 담당하며, 결국 뇌는 수많은 관찰자가 정보를 포착,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최적의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점심 식사 후 재개된 오후 강연은 컬럼비아 대학의 Hakwan Lau 교수가 발표를 맡았다. 발표자는 인간의 메타 인지(metacognition)의 불완전성, 메타 인지의 영역특수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가 인용한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시각 또는 단어 기억 과제를 낸 다음, 참가자들의 메타인지를 측정해서 d’(신호탐지이론을 참고할 것)을 계산했다. 분석 결과 시각과 기억 점수 간 상관이 발견되었다. 이는 메타인지가 영역 일반적임음을 증명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뇌영상 결과는 두 과제에서 다른 부위가  활성화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결과를 통해 각기 다른 유형의 메타 인지가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다양한 종류의 메타 인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다소 혼란스러웠다. 바우마에스터는 의지력이나 통제력이 단일한 resource에 기반하며 영역 일반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주의력이 영역 일반적이라는 연구 결과들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실들을 메타 인지에도 자연스럽게 유추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던 셈이다.




마지막 발표자인 옥스포드 대학의 Neil Levy 교수는 강연을 통해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적 관점을 반박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최근 인간의 자유 의지가 뇌의 발화에 따른 현상일 뿐이며, 우리 행동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발표자는 이를 반박하는 연구 자료를 통해 자유 의지가 위협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유 의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던 리벳(Libet)의 연구를 예로 들어보자. 리벳은 Readiness potential(RP)이 행동을 취하려는 의도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점을 들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의심한다. 그러나 RP는 행동이 일어나지 않을 때 관찰되기도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RP는 무선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며, RP가 의지 또는 예상된 행동과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결과도 있다.


결국 행동에 대한 자발적 의도를 지각하기 전에 뇌의 발화가 선행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유 의지를 부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신경과학연구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벗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식 액센트에 유독 약한 필자의 영어 실력 때문에 발표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나 마이크로 코스모스
작가
크리스티안 베버, 베르너 지퍼
출판
들녘
발매
2007.10.17


난이도:

대상: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나'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우주를 떠돌던 영혼이 육체를 빌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일까? 그럼 나란 존재는 내 육체와 별개인가? 아니면 뇌세포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나'라는 자각이 생겨난 것일까?


이 책은 환자들의 사례를 들기 시작해서 기억, 진화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인지심리나 사회심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관련된 연구를 모두 설명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산만해 보인다. 하지만 연구들이 하나의 정점을 향해 수렴한다. 이 책은 '나'라는 개념이 진화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수많은 하위체계(뇌세포 등)활동의 집합으로 이루어져다고 설명한다.


결 국 나는 깨지기 쉬운 임시적인 개념인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나는 '나'라는 개념을 만들어낼 수 없다.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늘 할 일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모든 일들일 단편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기억 하나만 손상을 입어도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뿐 아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제한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운명이라는 틀 속에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는지 모른다. 책에 소개된 연구들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의지를 가진 '내'가 허구일 수도 있음을 일깨워준다.


' 나'라는 존재는 사실 허구의 존재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하위요소 중 어느 하나만 무너져도 '나'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인간은 무아를 알지 못하고 '나'라는 존재가 영원불멸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죽어도 영원히 구천을 떠도는 불멸의 영혼이라기보다 진화과정에서 탄생한, 그리고 언젠가는 변하고 사라질 임시적인 존재다.  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우연치 않게 생겨났으며, 불완전하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내가 자연의 지극히 작은 일부임을 깨닫게 되면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 때부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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