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인지심리 매니아

나는 최근 어려운 의사결정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어떤 대상을 선택할지 말지를 결정할 일이 생겼는데, 내 머리 속에서 두 가지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내 정서는 대상에 강한 매력을 느끼고 그 대상을 선택하라고 속삭인다. 반면 내 이성은 대상에 대해 반대의견을 늘어놓으며, 선택을 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즉, 직관과 이성의 평가가 서로 충돌해서 선택을 쉽사리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서(또는 직관)와 이성이 충돌해서 그 대안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은 주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정서와 이성 중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약 여러분이 이와 같은 상황에 빠진다면, 정서와 이성 중 누구의 의견을 들을 것인가?

이 문제를 고민을 하던 중, 며칠 전 Wired가 소개한 새 논문이 눈에 띄였다.


글: Wired
번역: 인지심리 매니아

우리는 복잡한 의사결정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사소한 의사결정 하나-심지어 치약을 고를 때도-에도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마켓에서 취급하는 치약이 무려 200종이나 있기 때문이다. 불소 함유량이 많은 치약을 고르는 게 좋을까? 화이트닝 기능이 있는 치약을 골라야 할까? Crest는 Colgate와 다를까? 그 결과 평범한 선택을 할 때도 인지적 노력을 많이 들이게 되었다. 모든 대안을 평가할 때 고려할 변수를 행렬로 만들어서 점수를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치약 고르기 뿐만 아니다. 생수에서 청바지, 주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판단에서 이런 과정이 요구된다. 간단한 선택이란 건 없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놨다.

어떻게 이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한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대안을 탐색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천년 동안 분명해 보였다. 딜레마와 마주쳤을 때는, 선택지를 주의깊게 평가하고 주어진 정보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치약을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유용성과 비용 대비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존재다. - 우리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합리성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만약 직관에 의존할 때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 인간의 정서가 지니는 지혜는 수많은 문헌에서 다뤄졌지만, 정서 시스템(Type 1 사고라고도 한다)이 복잡한 의사결정에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은 최근 연구를 통해 비로소 밝혀졌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무의식이 복잡한 과제에서 의식적인 뇌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라고 평가했던 사고체계가 사실 이성적인 숙고보다 더 '현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의식이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의 이성은 매우 좁은 병목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에 제한된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다). 만약 치약 코너에서 수많은 대안 때문에 방황하고 있다면, 가장 괜찮게 '느끼는' 대안을 선택하면 된다.

이 이론과 관련해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연구는 2006년 Sience에 실렸던 압 데윅스테르하위스(Ap Dijksterhuis)의 연구다. (나는 이 연구를 탁월한 결정의 비밀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실험은 다음과 같다: 데윅스테르하위스는 자동차를 사려는 독일 사람들에게 네 가지 다른 자동차를 소개했다. 참가자는 각 자동차에 부여된 네 가지 평가항목 점수를 봤다. 예를 들어 1번 자동차의 경우 연비가 좋지만, 변속기가 조잡하고 카 스테레오가 별로였다. 2번 자동차는 핸들감이 별로지만, 공간이 넓었다. 데윅스테르하위스는 그 중 한 자동차가 다른 차보다 객관적으로 우월하게끔 만들어놨다. 자동차에 대한 평가를 보여준 다음, 연구자는 참가자들에게 몇 분 동안 어떤 차를 살지 생각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 '쉬운'조건의 경우, 절반 이상의 참가자가 가장 좋은 차를 골랐다.

그 다음 연구자는 같은 자동차들을 다른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엔 참가자가 의식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본 다음, 참가자는 간단한 단어 게임을 하게 된다. 연구자는 참가자가 게임을 하는 도중에 느닷없이 끼어들어서 어떤 자동차를 고를 거냐고 물어봤다. 연구자가 이렇게 한 목적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들의 의식적 주의는 단어 퍼즐을 푸는 데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참가자는 의식적으로 의사결정을 한 경우보다 나쁜 대안을 골랐다.

지금까지는 결과가 명확해 보인다. 이성적인 분석이 의사결정을 최적화한 것이다. 이 데이터는 전통적인 지혜를 확인시켜준다: 합리적인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워밍업에 불과하다. 연구자는 이 실험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는 각 자동차를 12가지 항목으로 평가한 자료를 사용했다. (이 어려운 조건은 우리가 실제로 자동차를 사는 상황과 비슷하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정보 때문에 차를 고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변속이나 연비 외에 컵홀더의 개수, 트렁크의 크기 같은 정보도 접하게 되었다. 그들의 뇌는 48가지나 되는 정보를 처리해야 했다.

의식적인 심사숙고가 최적의 의사결정으로 이어졌을까? 데윅스테르하위스는 이성적으로 생각한 집단이 좋은 차를 고를 확률은 25퍼센트 이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그들은 우연 확률보다도 더 못한 수행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몇 분 동안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던 집단은 좋은 차를 고를 확률이 60퍼센트 가까이 되었다. (이 결과는 Ikea나 가죽 소파를 사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발견되었다)그들은 혼란 속에서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이상적인 선택지를 찾아낸 것이다. 데윅스테르하위스는 이 데이터가 가지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의사결정 시 모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의식적인 노력을 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인 노력으로 정보를 분석하려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대신, 당신의 무의식이 정보를 소화할 때까지 잠시 여행을 떠나라. 당신의 직관이 내놓은 선택은 최적의 선택이 될 확률이 높다.

데윅스테르하위스의 연구는 수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몇몇 연구결과는 이를 반복검증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은 무의식적인 사고의 이점이 단순히 실험에서 발생한 우연에 불과하거나, 부화(incubation)의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달 Emotion에 실린 코넬 대학 연구팀의 새 논문[각주:1]은, 복잡한 의사결정에서 정서 사용이 이득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연구자들은 먼저 데윅스테르하위스의 자동차 실험을 단순 반복해봤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리는 대신, 연구자들은 참가자를 '감정에 집중'하는 집단과 '디테일에 집중'하는 집단으로 나누었다. 감정 집단의 경우 각 자동차가 어떻게 느껴지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 트렁크가 큰 걸 좋아하세요? - 반면 디테일 집단의 경우 각 자동차의 속성에 초점을 맞추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들의 가정은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 사람이 무의식에 의존하는 반면, 디테일에 집중한 사람은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디테일에 집중했던 그룹은 간단한 의사결정에서 수행이 월등했다. 이들은 16개의 정보가 주어진 경우 의사결정의 질이 20퍼센트 정도 높았다. 하지만, 복잡한 조건의 경우 감정에 집중했던 사람들이 더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렸다. 의식적인 결정을 내린 집단이 좋은 차를 고를 확률이 50퍼센트 정도였던 반면, 감정에 의존했던 집단은 확률이 70퍼센트나 되었던 것이다. 참가자가 의사결정 후 느끼는 주관적 만족도의 경우도 동일한 결과가 관찰되었다. 자신의 정서에 의존해서 결정을 했던 사람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연구자들은 마지막 실험에서 정서를 통한 의사결정의 이점이 합리적인 생각을 하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만약 우리가 어떤 정보를 고려할 때 강한 직감을 느꼈다면, 그 직감을 의심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이 현상이 자동차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도 발견했다. 우리 감정은 아파트를 고를 때나 여행 장소를 고를 때도 유용하다.

이 새로운 연구는 무의식이 복잡한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논쟁을 지속시킬 것이다. 정서의 이점에 대한 증거들은 아직 잠정적이지만, 확실한 건 정서에 대한 기존 관점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본능,정서,직관이 비이성적이고 무책임하며, 과거 인간이란 동물에서 물려받은 퇴화된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 덕분에 우리 정서 또한 논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본능은 무의식이 가진 처리 능력에 기반하고 있다. Type 1 시스템의 막대한 계산 능력은 - 수천 비트의 데이터를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 대안을 평가할 때 관련 정보를 분석할 수 있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치약 코너에 있는 무수한 선택지에다가 정서적 태그를 붙일 수 있다. 가장 좋은 대안이 가장 긍정적인 정서와 연합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에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다음 결론을 들어보자.

요컨대, 이번 연구의 결과는 정서적 전략이 의사결정을 최적화하는 수단이라고 말해준다. 이 연구 결과는 정서가 의사결정에 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지지한다. 또, 이 결과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전략을 써야 하는지 알려준다. 많은 질문들이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있지만, 이 결과는 복잡한 문제를 만났을 때 당신의 직관을 따르라고 말해준다. 또, 결정을 할 때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도 말해준다.



이 글의 내용이 현재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처한 딜레마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위 결과를 적용하기 힘들어 보였다(아래는 개인적인 견해를 적은 것이다)

첫째, 선택지(옵션이나 대상)가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 연구 결과가 물건 뿐 아니라 다른 성질의 대안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둘째, 고려할 변수의 숫자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위 실험의 경우 실험자가 참가자에게 고려할 변수를 직접 지정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굉장히 인위적이며,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보인다. 현실의 경우 고려할 변수를 본인이 직접 선택해야 하며, 따라서 적절한 변수의 수를 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직관과 이성 중 어떤 전략을 써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직관-이성 전략을 선택하려면 적절한 변수의 '선택'이 선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절한 변수의 선택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규칙은 없는 것 같다(문제마다 상황과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딜레마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교훈을 얻기는 했다. 지금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직관에 따르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는 것.




  1. Mikels, Joseph A, Maglio, Sam J, Reed, Andrew E, Kaplowitz, Lee J, Should I go with my gut? Investigating the benefits of emotion-focused decision making, Emotion, Vol 11(4), Aug 2011, 743-753. doi: 10.1037/a0023986 [본문으로]
탁월한 결정의 비밀
작가
조나 레러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09.10.20

 

 


Posted by 인지심리 매니아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 친구가 수능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상해. 처음에 쓴 답이 미심쩍어서 고쳐쓰면 꼭 틀린단 말이야. 처음에 쓴 답이 오히려 신중하게 생각할 때보다 정답인 경우가 많더라고."

여 러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전략이 더 현명한 방법일지 궁리해 봤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도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 처음에 생각 난 답과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쳐 쓴 답 중 정답이 될 확률은 어느 쪽이 높을까?


10년이 지난 다음 우연히 조나 레러의 '탁월한 결정의 비밀'을 읽다가 실마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옛 친구들은 이미 대학에 진학한 상태다. 그래도 이와 동일한 궁금증을 갖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도파민을 통한 '경험적 학습'이 직관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예상이 적중했을 때 도파민이 왕성해지고 반대로 무언가 예상과 다를 때는 negative 신호가 주어져서 일련의 학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된 지식은 우리의 직관을 이루게 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발휘된다.

이 직관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인 사고의 수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고등학교 친구는 당시 엄청난 양의 공부를 소화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문제집을 푸는 과정에서 친구는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를 기억 어딘가에 저장했을 것이다(정답이 맞았을 때 느끼는 도파민 분출과 틀렸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나왔을 때 친구의 직관은 신속하게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의식이 이런 gut feeling을 방해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바로 그 점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때로는 전전두피질이 변연계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전전두피질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해답을 내놓고도 다시 의식을 써서 답을 망친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의사결정에서 이성과 감정이 담당하는 역할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심리학이나 신경과학 연구결과들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이 재미있어서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의사결정은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의사결정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의사결정의 종류에 따라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고민한다. 마트에서 라면을 살 때는 뇌의 어떤 부위를 사용해야 하는가? 수능 시험에 정답을 고칠까 말까 고민할 때는? 이 여자랑 결혼을 할지 말지는?

완 벽한 결론은 없지만, 저자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위에서 든 친구의 사례처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이 활용될 때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직관(감정)을 믿어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반면, 새로운 상황이거나 우리의 작업기억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주어진 상황이라면 이성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래도 의사결정은 여전히 불확실한 영역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쉽다. 결국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개의 도구를 어떻게 적절히 사용하는지가 핵심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플라톤이 말한 마부와 말을 화해시켜서 의사결정 너머에 있는 저 이데아에 도착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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