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지심리 매니아


필자는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들을 즐겨 읽는다. 불교의 이론들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썼다는 점, 저자가 필자와 나이는 비슷하지만 훨씬 깊은 생각을 가진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저서라면 빠짐없이 읽어 본다. 평소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만화로 가득한 '번뇌 리셋'을 읽기도 했다.  가벼운 그림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어서 진지하게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최근 그의 저서 '생각 버리기 연습'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일상에서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하지만 인지심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또다른 이유로 이 책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케가야 유우지'와의 대화편 때문이다. 스님과 뇌과학자의 대화는 동양의 거대한 지혜와 인지과학이 만난 작은 사건이다.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을 초대했던 사건 이래 불교와 과학이 교류를 시작했고, 이 두 사람의 대화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불교와 과학의 랑데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인지심리 매니아 역시 이런 랑데뷰에 참여하기로 했다.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코이케 류노스케가 했던 말들을 인지심리 연구와 비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불교와 인지심리 연구를 연결할 정도로 뛰어난 학식은 없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노력했다.



念力, 定力과 인지심리학


'생각 버리기 연습' 29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쓸데없는 생각을 깨닫는 힘을 불교에서는 '염력(念力)'이라 부른다. 염이란, 알아차리는 능력, 즉 '의식의 센서'이다. 이 센서가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변화를 알아차린 뒤에 마음의 작용을 바꾸는 힘을 '정력(定力)'이라 한다. 이 힘은 곧 '집중력'으로, 의식을 조절해 하나의 장소에 모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이 아주 빠른 속도로 흩어져 여기저기로 달려가는 것을 끌어 모아 한 곳으로 가도록 정해주는 것이다.


즉, 쓸데없는 생각을 의식의 센서로 알아차리고, 주의를 통해 의식을 다시 한 곳으로 모은다는 것이다. 불교의 이런 주장은 심리학적으로 근거가 있으며, 과연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심리학에도 불교의 염력, 정력과 유사한 개념을 있기는 하다. 위 문장을 읽던 필자의 머리 속에서 Wegner라는 학자가 순간 떠올랐다. Wegner는 자기 통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인지 과정이 작동한다고 주장했다[각주:1]. Monitoring process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감시하는 인지과정이다. 만약 Monitoring process를 통해 자신이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즐 쓸데없는)을 인식하면, Operation process를 통해 이를 바로 잡는다. 즉, Operation process는 자신의 상태를 원하는 상태로 조절하는 인지과정이다. 그런데 Wegner가 주장한 두 가지 인지과정이 우연하게도 불교의 이론과 유사해 보인다. Monitoring process는 '염력', Operation process는 '정력'과 유사해 보이지 않는가?
Wegner 이후의 연구는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자신의 상태를 감시하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컨트롤하는 인지과정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Botvinick, Braver, Barch, Carter, & Cohen, 2001, Holroyd & Coles, 2002).  결국 불교의 이론은 과학적으로도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는 쓸데없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이를 바로 잡는 능력이 연습에 의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맞다. 우리는 주위에서 명상을 통해 이런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잘 되지 않는다. 정말 명상을 하면 스님처럼 자신의 생각을 맑은 거울처럼 반영하고 이를 옳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을까?

이전 심리학 연구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회의적인 것 같다. 어떤 생각이 잘못되거나 쓸데없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억누르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자 노력하면, 오히려 무시하려는 생각이 튀어오르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Wegner는 이를 Ironic process theory에서 역설했다. Wegner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쓸데없는 생각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순에 가깝다. 예를 들어 누군가 게임을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공부에 집중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무시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이 게임에 관한 생각을 한다고 인식한 후(Monitoring), 이를 억누르거나 공부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Operation).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게임 생각을 억누르려면 공부하다가 이따금씩 '내가 게임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감시(monitoring) 해야 한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방금 앞 문장에서 그 사람은 게임 생각을 감시하려고 하는 찰나에 이미 게임 생각을 하는 모순에 빠진다. "내가 혹시 게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생각하면 이미 게임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자기 통제 능력은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있다. Inzlicht et al(2007)[각주:2]은 참가자들에게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도록 지시했다(아마 슬픈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려면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통제에 힘을 다 써 버리면, 그 다음엔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생각을 컨트롤 하기 힘들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결과는 연구자들의 예상대로였다. 자신의 생각이 목표와 벗어나있음을 알아차릴 때는 전대상회에서 ERN(Error related negativity)이라는 뇌파가 발생한다(Wegner의 Monitoring Process와 관련있어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통제했던 참가자들은 스트룹 테스트를 할 때 ERN 발생이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스트룹 테스트에 반응하는 반응시간 역시 느려졌다.

반응시간

(왼쪽이 자기 감정을 통제했던 집단이다. 반응시간이 통제집단보다 느리다)


ERN

(점선이 감정을 통제했던 집단이다. 70~80ms에서 발생하는 ERN의 진폭이 통제집단보다 줄어들었다).


종합해보면,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할 경우 자기 통제에 필요한 힘이 점점 소진되서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Wegner의 주장이 맞다면 억누르는 생각은 더 튀어오를 뿐이다. 그렇다면 명상으로 생각을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잡생각이 무섭게 튀어오르기 시작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더 심해질 뿐이다. 그럼, 생각 버리기는 결국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불교식 수행 방법이 주의력을 높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 연구들의 기본 전제는 자기 통제에 필요한 힘(주의력도 포함된다)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연습한다고 크게 늘어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생각 버리기 연습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근육 운동과 같다. 처음에는 아령을 1세트만 들어도 지쳐서 더 이상 들지 못한다. 하지만 연습하면 2세트가 가능해진다. 생각 버리기 연습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15분만에 잡생각이 떠오르고 ERN의 감소와 함께 통제 능력이 상실될 수 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내 주의력 근육은 성장한다. 물론 잡생각은 여전히 떠오르고 나중에는 통제가 불가능해 지지만 이번엔 20분을 집중할 수 있다.

심리학계에서는 동양식 주의 훈련 방법을 Attention state training(AST)라고 정의하고 이 훈련 방식의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서양식 주의력 훈련(AT)보다 효과가 뛰어났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AST 개관 논문을 소개한 이전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2011/07/31 - [인지심리학/주의] - 주의력 훈련의 연구 동향


진리는 아무나 깨닫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코이케 류노스케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힘이 강한 것 같다. 필자는 아직 이 정도의 내공이 있지도 않고, 생각을 버리는 능력이 연습으로 습득된다는 사실마저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는 불교식 수행 방법의 효과를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 최소한 연습을 통해 생각을 버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조심스레 해 본다.






  1. Wegner, D. M. (1994), "Ironic Processes of Mental Control", Psychological Review 101 (1): 34–52, doi:10.1037/0033-295X.101.1.34, PMID 8121959. [본문으로]
  2. Michael Inzlicht, Jennifer N. Gutsell, Running on Empty Neural Signals for Self-Control Failure, PSYCHOLOGICAL SCIENCE, 2007 [본문으로]


출처: Choke

번역: 인지심리 매니아


다이어트 계획을 실천에 못 옮기거나,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술을 끊기로 마음먹었지만 또 술을 마시는 이유는 뭘까? 이게 모두 자기 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행동을 제어하는​​ 능력을 심리학에서는 집행 통제(Executive control)이라고 한다. 집행 능력은 인지 기능의 집합을 일컫는 포괄적 용어다(주의, 계획, 기억, 행동을 개시하거나 억제하는 등). 때때로 이성보다 충동이 앞서는 이유는 집행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Psychological Science에서 지난 주 발표된 한 논문이 작업 기억을 훈련하면 통제력 상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두엽 피질에 자리하고 있는 작업 기억은 집행 통제와 강한 관련이 있다. 작업 기억이 작은 사람은 집행 기능이 저조하며, 작업 기억을 훈련할 경우 집행 통제가 향상된다. 네덜란드 Maastricht 대학의 Katrijin Houben과 동료들은 작업 기억의 강화가 충동 억제를 돕는지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술고래들의 충동 억제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일주일에 술을 30잔 이상 마시는 사람을 모집한 다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작업 기억 훈련 세션에 참여하게 했다. 한달동안 총 25세션이 진행되었고 일반인 역시 실험집단과 플라시보 훈련 집단에 함께 참여했다.


처치 집단의 경우 언어와 공간 과제 등 작업 기억을 훈련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어떤 과제의 경우 처치 집단은 컴퓨터 화면에 하나씩 나타나는 글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글자들을 기억했다가 글자가 제시된 순서와 반대의 순서로 글자를 회상해야 한다. 이런 역기억(backwards memory task) 과제는 제시된 자극을 기억한 다음 머리속에서 순서를 뒤집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어렵다. 이렇게 순서를 뒤집는 작업은 작업 기억에서 일어난다. 이 과제는 사람들이 역기억 과제를 잘 할수록 - 즉 얼마나 많은 항목의 순서를 머리 속에서 뒤집을 수 있는지 - 난이도가 조금씩 올라간다. 결국 이 훈련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 기억을 조금씩 향상하도록 만든다.


플라시보 그룹에 속한 일반인 역시 컴퓨터를 통해 다양한 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그룹은 강도높은 작업 기억 훈련을 받지 않았다. 플라시보 그룹의 역기억 과제는 적은 단어수만을 제시했으며, 난이도(단어수)도 증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처치 집단의 사람들은 연습함에 따라 작업 기억 과제를 잘 했다. 하지만 일반인도 연습하지 않은 다른 집행 통제 과제에서 향상을 보였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처치 집단의 사람들이 실험 전보다 술을 10잔 정도 덜 마시게 되었다는 점이다(술을 마시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줄어들었다). 플라시보 집단의 사람들은 음주 습관에서 별 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고 한 달 후, 연구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다시 한번 작업 기억 측정과 음주 평가를 받았다. 연구자들은 작업기억 훈련의 효과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작업 기억 향상과 음주량 감소.


물론 이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또 알콜중독자의 경우에도 이 훈련이 효과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선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뇌의 근육을 훈련하면 알콜 남용이나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Reference

Katrijn Houben et al(2011), Getting a Grip on Drinking Behavior : Training Working Memory to Reduce Alcohol Abuse, Psychologic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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