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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기억/학습

교육제도의 일곱가지 죄악

출처: Psychology today

저자: Peter Gray

(a research professor of psychology at Boston College, is a specialist in developmental a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author of an introductory textbook, Psychology)

번역: 인지심리 매니아


지난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나는 다소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학교는 감옥"이라고 말했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학교가 나와 지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지인들과 마찬가지로 12년 동안 공교육에 몸 담아왔다. 어머니는 몇 년 동안 공립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셨다. 사랑하는 내 이복 여동생은 공립 학교 교사다. 내 친구들과 사촌들 역시 공립 학교 교사들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 아이들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도와주는 - 아이들을 옥죄는 시스템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 마지막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보건데 학교가 감옥같다고 말한 내 발언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가끔은, 나와 다른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 상관없이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사실을  완곡하게 말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학교는 문자 그대로 감옥이다. 특정 연령이 된 사람은(특히 ~16세) 자신의 가장 좋은 시절을 학교에서 보내도록 법의 규제를 받는다. 학교는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말해주고, 이 명령은 강제적 성격을 띤다. 학생들은 자신이 따라야 하는 규칙에 대해 어떤 반발도 할 수 없다. 감옥은 -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면 - 비자발적인 감금이 이루어지고 자유를 제한하는 장소를 말한다.


설사 당신이 학교가 좋은 곳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학교가 감옥이 아니라고는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후자를 반박하는 것은 현 상황(강제적 교육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감옥이라는 단어가 일반적 정의와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다. 진지한 논의를 위해서 이 단어의 정의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규칙을 따르거나 즐겁지 않은 일을 할 때 감옥이라는 단어를 은유로 사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몇몇 성인들은 그들의 직장 또는 결혼생활이 감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예들은 자발적인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용례에 적합하지 않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것은 법에 위배된다. 하지만 아이를 억지로 학교에 보내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에 강제로 보내지 않는 경우가 법에 저촉된다. 결국, 직장이나 결혼생활이 감옥이 될 수 있겠지만 학교는 일반적으로 감옥이다.


또 하나 논의해야 할 용어가 있다. 바로 강요된 교육이다. 감옥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이 단어는 가혹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강압적인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강요된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강압적(compulsory)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어떤 결정권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논의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강요된 교육 - 그리고 계속적으로 어린이들을 감금하는 것 - 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요된 교육의 '일곱가지 죄악(seven sins)' 목록을 통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1.연령을 기준으로 한 자유의 억압


내 가치관이나  민주적인 사고방식에 비추어 봤을 때, 특정 이유 없이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빼앗는 건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법정에서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다른 사람을 심각하게 위협했음을 입증해야 그 사람을 감금할 수 있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단지 그들의 나이 때문에 학교에 감금한다. 이것이 강요된 교육의 가장 뻔뻔한 죄가 될 것이다.



2.수치심과 자만심을 조장


어떤 사람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교는 이제 예전처럼 매를 들지 않지만, 여전히 시험, 평가, 순위를 통해 학생들을 비교한다. 우리는 수치심이나 자존심같은 인간의 감정을 왜곡시켜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끔 만든다. 아이들은 자신의 성적이 또래보다 떨어지면 부끄러워하고, 잘하면 자만심을 갖는다. 수치심은 학생들의 학업 열의를 감소시키고, class clown이 되거나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마약에 손을 대게끔 만든다. 또 A라는 하찮은 성취를 이룬 학생은 거만해지게 되고,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고, 민주적 가치와 절차를 무시하게 된다.



3.협동과 배려심 저해


우리는 서로 협력하게끔 디자인 된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다. 어린이들은 선천적으로 자신의 친구들을 도와주려고 하며 학교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순위와 등급을 매기는 경쟁 기반 시스템은 학생들로 하여금 협동과 반하게끔 만든다. 한 학생이 친구를 도와줘도 상대방이 속임수를 쓰는 경우가 무척 많다. 남을 돕는 행위는 자기 성적을 떨어뜨리거나 자신의 위치를 격하시키는 등 자신에게 손해를 일으킨다. 학교 안에서 성공하기를 강하게 열망하는 학생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무자비한 성취자로 변한다. 또,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이 (2008년 9월 24일자) 강제적인 연령 분리는 경쟁과 괴롭힘을 조장하고 배려심의 발달을 억제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도움과 보살핌을 학습했다. 연령 등급의 학교 제도는 이러한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4.개인적 책임과 자기 주도성 발달의 저해


내 블로그의 가장 큰 주제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끔 생물학적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2008년 7월 16일). 어린이들은 놀이를 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기 주변의 사회적, 물리적 세상을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단계를 밟는다. 아이들을 학교와 성인 감독자에게 맡긴 체 아이들의 시간을 과제물로 채워버린다면, 우리는 아이 스스로 져야할 책임을 박탈하는 것이다. 또, 강요된 교육 체계에서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잘 하면, 모든게 잘 될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학생은 이런 생각을 가질 때 자신의 학습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 학생들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성공적인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 만약 그들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으면, 학생들은 학교를 원망하게 된다. "학교(또는 부모나 사회)가 나를 버렸기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



5.학습을 공포, 혐오, 고역과  연계


학교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학습과 불안을 연합시킨다. 남들보다 읽기 능력이 다소 부진한 학생은 타인 앞에서 글 읽기를 두려워한다. 시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학생은 불안해 한다.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은 막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나는 통계를 가르치면서 엘리트 대학의 학생 상당수가 수학 공포증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수학과 관련해서 받은 모욕이 원인이었다. 한가지 근본적인 심리적 원리는 불안이 학습을 저해한다는 사실이다. 학습은 놀이와 같은 환경에서 최적의 효과를 거두고, 불안은 놀이를 저해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강압적 교육은 학습을 일로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교사도 학습을 일이라고 말한다. "너는 놀기 전에 너가 할 일을 해야 돼." 결국 아이들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된 능력인 학습은 수고로 변한다.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일거리가 되는 것이다.



6.비판적 사고의 억제


교육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자들이 립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판적 사고를 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자신의 일일뿐 비판적 사고는 시간낭비라고 배운다.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우리는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으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나는 대학에서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나는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는 교수법, 작문법을 개발했고 컨퍼런스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앞으로 이 주제에 관해 포스트 두 개를 더 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동기(motivation)인 등급제도는 교실에서 비판적이고 진솔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걸 방해한다. 우리 교사들이 학생들을 등급 매기는 체계 하에서는, 소수의 학생만이 교사의 생각에 의문을 품거나 비판을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비판을 유도하기 위해 점수를 부여한다면, 그 역시 잘못된 비판을 만들어 낼 것이다.



7.기술, 지식, 사고 방식의 다양성 감소


우리는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표준 교과 과정을 적용함으로써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학교 교과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하위 기술, 지식을 대변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한정된 지식만 배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왜 모두가 똑같은 것을 배워야 할까? 아이들은 자유가 주어질 때 - Sudbury Valley School와 기타 unschooler의 예를 보면서 - 새롭고 다양하고 예측 못했던 경로를 찾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관심사에 열정을 보이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서 결국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학생들에게 강요된 표준적인 교과 과정은 자신만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시간을 빼앗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한다. 오직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시행하는 시험뿐이다. 몇몇 학생들은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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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죄악' 목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나와 대화했던 많은 교사들이 강요된 교육의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고, 이에 대응하려는 시도도 많이 있었다. 그 중 일부는 교육 시스템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와 놀이를 가르쳐주고자 했다. 또 실패에서 오는 수치심이나 불안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서로 협력하고 돕는 자세를 고양하고자 했다. 또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은 이런 노력과 정반대로 돌아간다. 솔직히 말하면, 현 교육 시스템에선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배우는 것보다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가르치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런 시도를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는 점에서 감옥은 아니다.)


사람은, 특히 어린이는, 놀랄 정도로 적응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강요된 교육에서 오는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들은 죄악과 싸운다. 그들은 서로 협력할 방법, 놀이를 할 방법, 다른 사람을 돕고 수치심을 극복할 방법, 자만심을 버리는 방법, 괴롭힘에 대항하는 방법,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자신만의 관심사를 찾는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충족하는 동시에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한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과제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 학교의 요구에 따라야 하므로, 자기 자신을 위한 교육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나는 오늘 강요된 교육제도의 '일곱 가지 죄악'을 열거했는데, 죄악은 일곱가지로 한정되지 않는다. 일곱 개 이상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학교를 등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지만, 어른인 우리들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그게 나의 다음 포스트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