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자꾸 하면 어리석어진다


피노키오의 코



글: 인지심리 매니아

불교의 십선계 중 불망어(不妄語)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코이케 류노스케는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망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꾸 원래와 다르게 사실을 말하다 보면, 마음은 바르지 않은 정보를 바른 정보 위에 덧쓰게 된다. 사실과 거짓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정보가 마음에 새겨지면 정보처리능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기억들 사이의 연결이 혼란스러워진다.

이 말은 정말일까?
아니면 거짓말 하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하는 일종의 거짓말일까?

인간이 사실과 거짓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본인이나 타인에게 큰 손해가 된다. 심리학 연구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어떤 피해를 입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거짓말로 인해 타인이 입는 손해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코이케 류노스케는 거짓말이 기억들 사이의 연결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말했는데, 이건 정말 사실이다. 인지심리학 연구에서는 로프터스 교수의 실험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어느 날, 로프터스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동생에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게끔 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사례를 살펴보자. 한 학생은 자신의 동생에게 어릴 적 쇼핑몰에서 길을 잃어버렸던 사건을 기억하냐고 물어봤다. 동생은 사실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동생은 겪지도 않은 일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사건 당일 느꼈던 감정이나 대화까지도 기억해냈다. 있지도 않은 일을 기억해낸 것이다.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피의자 심문 단계에서 조사자가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을 집중추구할 경우, 피의자가 거짓자백을 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피의자는 자신이 혐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집중추구를 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원래 기억과 조사관의 말을 헷갈리게 된다. 결국 피의자는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잘못 기억하게 된다.

심리학 연구결과는 중요한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거짓말은 듣는 사람의 장기 기억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로 인해 자신이 입는 손해

그럼 본인의 경우는 어떨까? 본인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분명 알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는 코이케 류노스케의 말처럼 자신의 기억 사이에서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이케 류노스케의 말이 정답이다. 거짓말 하는 사람도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

2004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심리학 연구를 살펴보자[각주:1].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생생한 상상을 실제 봤던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그들은 이 현상을 유도하기 위해 참가자에게 다음과 같은 실험 절차를 사용했다.




학습 단계에서 참가자중 절반은 Word+Picture, 나머지 절반은 Word Only 조건에 할당되었다. 단어는 글자 또는 음성으로 제시되었다. 단어와 그림이 함께 나오는 경우 단어가 제시된 후 단어와 일치하는 그림이 제시된다. 반면, 단어만 나오는 조건은 그림이 제시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이런 단어쌍 수백개를 본 다음 테스트를 거친다. 이 테스트는 특정 단어를 보여준 뒤, 이 단어에 해당하는 그림을 학습 단계에서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

인간은 단어를 듣고 단어에 해당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 상상한 것과 실제경험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가정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참가자들은 단어만 제시되었던 경우에도 그림까지 봤다고 잘못 기억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예상대로 사람들은 상상과 진실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단어만 보여준 경우, 사람들이 그림까지 봤다고 답한 경우가 전체 문항의 27%나 되었던 것이다. 반면 학습 단계에서 단어, 그림을 모두 보여준 적이 없는 새 단어의 경우 오류율은 6%에 그쳤다. 따라서 상상을 진실로 착각한 경우가 상상하지 않은 경우보다 오류율이 4배나 높은 것이다.
연구자들은 상상과 진실을 착각하는 현상이 뇌의 어떤 부위와 관련있는지 알아봤다. fMRI 결과, 전대상회, precuneus regions, right inferior parietal area가 이 현상과 관련있었다. 반면, 정확한 기억의 경우 left inferior prefrontal 영역의 활성화가 두드러졌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시각적으로 상상한 것과 실제 있었던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비록 시각적 상상에 국한된 연구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거짓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거짓말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거짓 사실을 머리 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상상이 뚜렷하면 뚜렷할 수록, 거짓말 하는 당사자의 원래 기억은 왜곡된다. 결국, 자신이 한 거짓말에 자신이 속아넘어가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진리에는 변함이 없다. 불망어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 같다.

필자는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일 때마다 매번 감탄한다.
  1. Gonsalves, B., Reber, P. J., Gitelman, D. R., Parrish, T. B., Mesulam, M.-M., & Paller, K. A. (2004). Neural evidence that vivid imagining can lead to false remembering. Psychological Science, 15, 655–660. [본문으로]



글: 인지심리 매니아


필자는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들을 즐겨 읽는다. 불교의 이론들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썼다는 점, 저자가 필자와 나이는 비슷하지만 훨씬 깊은 생각을 가진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저서라면 빠짐없이 읽어 본다. 평소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만화로 가득한 '번뇌 리셋'을 읽기도 했다.  가벼운 그림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어서 진지하게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최근 그의 저서 '생각 버리기 연습'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일상에서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하지만 인지심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또다른 이유로 이 책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케가야 유우지'와의 대화편 때문이다. 스님과 뇌과학자의 대화는 동양의 거대한 지혜와 인지과학이 만난 작은 사건이다.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을 초대했던 사건 이래 불교와 과학이 교류를 시작했고, 이 두 사람의 대화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불교와 과학의 랑데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인지심리 매니아 역시 이런 랑데뷰에 참여하기로 했다.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코이케 류노스케가 했던 말들을 인지심리 연구와 비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불교와 인지심리 연구를 연결할 정도로 뛰어난 학식은 없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노력했다.



念力, 定力과 인지심리학


'생각 버리기 연습' 29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쓸데없는 생각을 깨닫는 힘을 불교에서는 '염력(念力)'이라 부른다. 염이란, 알아차리는 능력, 즉 '의식의 센서'이다. 이 센서가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다. 변화를 알아차린 뒤에 마음의 작용을 바꾸는 힘을 '정력(定力)'이라 한다. 이 힘은 곧 '집중력'으로, 의식을 조절해 하나의 장소에 모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이 아주 빠른 속도로 흩어져 여기저기로 달려가는 것을 끌어 모아 한 곳으로 가도록 정해주는 것이다.


즉, 쓸데없는 생각을 의식의 센서로 알아차리고, 주의를 통해 의식을 다시 한 곳으로 모은다는 것이다. 불교의 이런 주장은 심리학적으로 근거가 있으며, 과연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심리학에도 불교의 염력, 정력과 유사한 개념을 있기는 하다. 위 문장을 읽던 필자의 머리 속에서 Wegner라는 학자가 순간 떠올랐다. Wegner는 자기 통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인지 과정이 작동한다고 주장했다[각주:1]. Monitoring process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감시하는 인지과정이다. 만약 Monitoring process를 통해 자신이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즐 쓸데없는)을 인식하면, Operation process를 통해 이를 바로 잡는다. 즉, Operation process는 자신의 상태를 원하는 상태로 조절하는 인지과정이다. 그런데 Wegner가 주장한 두 가지 인지과정이 우연하게도 불교의 이론과 유사해 보인다. Monitoring process는 '염력', Operation process는 '정력'과 유사해 보이지 않는가?
Wegner 이후의 연구는 인간의 뇌에서 실제로 자신의 상태를 감시하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컨트롤하는 인지과정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Botvinick, Braver, Barch, Carter, & Cohen, 2001, Holroyd & Coles, 2002).  결국 불교의 이론은 과학적으로도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는 쓸데없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이를 바로 잡는 능력이 연습에 의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맞다. 우리는 주위에서 명상을 통해 이런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잘 되지 않는다. 정말 명상을 하면 스님처럼 자신의 생각을 맑은 거울처럼 반영하고 이를 옳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을까?

이전 심리학 연구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회의적인 것 같다. 어떤 생각이 잘못되거나 쓸데없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억누르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자 노력하면, 오히려 무시하려는 생각이 튀어오르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Wegner는 이를 Ironic process theory에서 역설했다. Wegner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쓸데없는 생각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순에 가깝다. 예를 들어 누군가 게임을 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공부에 집중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무시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이 게임에 관한 생각을 한다고 인식한 후(Monitoring), 이를 억누르거나 공부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Operation).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게임 생각을 억누르려면 공부하다가 이따금씩 '내가 게임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감시(monitoring) 해야 한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방금 앞 문장에서 그 사람은 게임 생각을 감시하려고 하는 찰나에 이미 게임 생각을 하는 모순에 빠진다. "내가 혹시 게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생각하면 이미 게임 생각을 한 게 아닌가?!

자기 통제 능력은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있다. Inzlicht et al(2007)[각주:2]은 참가자들에게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도록 지시했다(아마 슬픈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려면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통제에 힘을 다 써 버리면, 그 다음엔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생각을 컨트롤 하기 힘들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결과는 연구자들의 예상대로였다. 자신의 생각이 목표와 벗어나있음을 알아차릴 때는 전대상회에서 ERN(Error related negativity)이라는 뇌파가 발생한다(Wegner의 Monitoring Process와 관련있어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통제했던 참가자들은 스트룹 테스트를 할 때 ERN 발생이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스트룹 테스트에 반응하는 반응시간 역시 느려졌다.

반응시간

(왼쪽이 자기 감정을 통제했던 집단이다. 반응시간이 통제집단보다 느리다)


ERN

(점선이 감정을 통제했던 집단이다. 70~80ms에서 발생하는 ERN의 진폭이 통제집단보다 줄어들었다).


종합해보면,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할 경우 자기 통제에 필요한 힘이 점점 소진되서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Wegner의 주장이 맞다면 억누르는 생각은 더 튀어오를 뿐이다. 그렇다면 명상으로 생각을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잡생각이 무섭게 튀어오르기 시작하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더 심해질 뿐이다. 그럼, 생각 버리기는 결국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불교식 수행 방법이 주의력을 높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존 연구들의 기본 전제는 자기 통제에 필요한 힘(주의력도 포함된다)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연습한다고 크게 늘어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생각 버리기 연습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근육 운동과 같다. 처음에는 아령을 1세트만 들어도 지쳐서 더 이상 들지 못한다. 하지만 연습하면 2세트가 가능해진다. 생각 버리기 연습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15분만에 잡생각이 떠오르고 ERN의 감소와 함께 통제 능력이 상실될 수 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내 주의력 근육은 성장한다. 물론 잡생각은 여전히 떠오르고 나중에는 통제가 불가능해 지지만 이번엔 20분을 집중할 수 있다.

심리학계에서는 동양식 주의 훈련 방법을 Attention state training(AST)라고 정의하고 이 훈련 방식의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서양식 주의력 훈련(AT)보다 효과가 뛰어났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AST 개관 논문을 소개한 이전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2011/07/31 - [인지심리학/주의] - 주의력 훈련의 연구 동향


진리는 아무나 깨닫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코이케 류노스케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힘이 강한 것 같다. 필자는 아직 이 정도의 내공이 있지도 않고, 생각을 버리는 능력이 연습으로 습득된다는 사실마저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는 불교식 수행 방법의 효과를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 최소한 연습을 통해 생각을 버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조심스레 해 본다.






  1. Wegner, D. M. (1994), "Ironic Processes of Mental Control", Psychological Review 101 (1): 34–52, doi:10.1037/0033-295X.101.1.34, PMID 8121959. [본문으로]
  2. Michael Inzlicht, Jennifer N. Gutsell, Running on Empty Neural Signals for Self-Control Failure, PSYCHOLOGICAL SCIENCE, 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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