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 http://www.sophia.org/tutorials/interpreting-vocabulary-in-context



글 : 인지심리 매니아


우리는 단어 암기에서 ‘맥락(context)’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영어 강사들의 강의를 듣다 보면 단어를 문장과 함께 통째로 외우라는 조언을 한번씩 들을 수 있다. 시중에 나온 영단어 암기장도 이런 통념을 반영하듯 단어를 문장 속에 포함해서 수록한다. 책 제목에도 ‘통암기'라는 문구를 삽입한다.


한편,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정교화(elaboration)' 원리도 맥락의 중요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정교화란 주어진 정보 이외에 부가적으로 연결되는 명제를 생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심리학 관련 연구들은 사람들이 복잡한 문장 맥락에서 단어를 암기했을 때 회상을 더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속설이나 심리학 연구를 종합해 볼 때, 맥락은 단어 암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학습 현장에서 정말 효과가 있을까? 네덜란드의 한 연구팀은 실제 학습 현장에서 맥락과 테스트가 단어 기억에 도움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했다[각주:1].


연구자들은 자국 언어 중 어려운 단어를 선별해서 네덜란드 초등학생 62명을 대상으로 학습을 실시했다. 학습은 총 7단계로 이루어졌다. 이 때 맥락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단어를 이야기와 함께 또는 단어쌍(ex, baret-muts)으로 제시했다. 또, 테스트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학습 시 단어를 반복 학습하거나 또는 중간에 시험을 보면서 학습하도록 조작했다.


실험 절차

 학습 단계

학습 방식 

 1단계

 단어 제시

 이야기 조건 : 단어를 이야기 속에 포함하여 제시

 단어쌍 조건 : 단어쌍만 제시 (단어-외워야 할 동의어) 

 2단계

 1단계와 동일

 (단어를 화면에 제시하는 점이 다름)

 3단계

 단어쌍 제시 

 4단계

 3단계와 동일

 5단계

 테스트 조건 : 단어쌍 중 일부만 제시. 정답(동의어)를 말해야 함. (ex, baret - ?)

 재학습 조건 : 4단계와 동일 

 6단계

 2단계와 동일

 7단계

 5단계와 동일



학생들은 1주일 뒤 단어 시험을 봤다. 시험은 cued recall 테스트와 선다형 테스트로 구성되었다. cued recall 테스트는 제시된 단어의 동의어를 직접 말하는 방식인 반면, 선다형 테스트는 문장 속에서 강조 표시된 단어의 동의어를 보기에서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테스트 결과는 우리의 직관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cued recall 테스트나 선다형 테스트 모두 단어쌍만 봤던 집단의 점수가 이야기 조건보다 높았던 것이다. 



실험 결과표(정확도 점수)

 

 단어쌍 조건

이야기 조건 

 cued recall 테스트

 0.47(0.21)

 0.39(0.19)

 선다형 테스트

 0.83(0.14)

 0.72(0.16)



필자 역시 단어는 문장과 함께 암기하라고 조언했던 사람 중 하나라서 이 결과가 조금 당황스럽다. 하지만 유사한 연구 결과가 상당수 있는 걸 감안할 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맥락 효과는 실제 학습 현장에서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며, 추후 연구가 진행될 때까지 결론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1. Goossens, N. A., Camp, G., Verkoeijen, P. P., & Tabbers, H. K. (2013). The Effect of Retrieval Practice in Primary School Vocabulary Learning. Applied Cognitive Psychology. [본문으로]




글 : 인지심리 매니아



얼마 전부터 지인의 부탁으로 고 2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게 되었다. 이 학생은 수학은 잘 하지만 영어를 못해서 고민이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하기 위해 학생의 독해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모르는 영어 단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넌 단어를 어떻게 외우니?” 그 학생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그냥 단어를 입으로 수없이 반복하면서 외운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학생에게 단순 반복은 암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단순 반복은 그야말로 ‘최악'의 단어 암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특정 단어나 숫자를 입으로 반복(인지심리학에서는 시연, rehearsal이라고 한다)하면, 해당 정보는 작업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유지된다. 지금부터 ‘48932375’라는 숫자를 입으로 반복해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입으로 계속 ‘사팔구삼이삼칠오'라고 중얼거리는 동안은 숫자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도 이런 이유 때문에 단순 반복이 정보를 기억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이 일주일 뒤에도 이 숫자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 지금 이 문장을 읽는 동안 이미 숫자를 까먹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맞다. 단순 반복 만으로는 정보가 장기 기억에 저장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정보가 장기 기억에 통합되기 위해선 다른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48932375를 새하얗게 잊어버린 것처럼, 단순 반복 전략을 쓴 학생들도 자신이 외운 영단어를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그 날 이후로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이 단어를 쉽게 외울 수 있을지 궁리한 끝에, 필자는 조금 독특하지만 효과적인 단어 암기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암기법을 ‘단어 퍼즐'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암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외우고자 하는 영 단어를 죽 나열한다. 그 다음, 나열한 단어를 모두 사용하여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예)

1. 외우고자 하는 단어를 나열한다

Determine comfort consume object impress available contain diet recognize material


2. 각 단어를 모두 사용하여 짧은 이야기를 만든다.

Recently, FDA Determined some diet foods are not safe. These diet foods which are available to buy on the internet contain harmful material. The medicines company recognized that their products contains morphine, so make consumers comfortable temporarily. Doctors also objected to using these diet foods.



처음에는 이 암기법이 효과가 있을지 반신 반의했다. 그런데, 이렇게 작문 숙제를 내주자 학생의 단어 재인률이 높아졌다. 더 신기한 건 학생 뿐 아니라 선생인 필자 역시 수 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작문 내용과 단어를 잘 기억한다는 점이다. 학생 뿐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도 단어를 모두 외운 것이다. 


이 암기법은 사실 인지심리학 이론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우선, 필자는 정보가 장기기억에 통합되거나 인출될 때 유리하게 작용하는 과정들을 모두 열거해 봤다. 그리고 그 중 정교화, 부호화 특수성, 도식, Salience라는 요인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암기법을 만들었다.


첫째, 이 암기법은 정교화(Elaboration)를 활용한다. 정교화란 주어진 정보 이외에 부가적으로 연결되는 명제를 생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주어진 단어로 문장을 만들면, 단어가 스토리의 문장(명제)과 연합된다. 단어에 수많은 명제가 연결되면, 나중에 기억을 인출할 단서가 풍부해진다. 즉, 이야기의 문장 또는 함께 쓰인 단어(인출 단서) 중 하나만 기억하더라도, 이와 연결된 해당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둘째, 이 암기법은 부호화 특수성 원리에 충실하다. 부호화 특수성은 기억 과정과 인출 과정이 유사할 때 기억이 잘 떠오른다는 원리다. 단순 반복의 경우 단어의 소리를 반복하기 때문에, 단어의 발음을 기억해보라고 하면 기억이 잘 날지는 모르나 단어의 ‘뜻'은 기억이 안 나기 쉽다. 반면, 이 암기법은 작문 과정에서 단어의 의미를 끊임없이 떠올려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른 지문에서 단어가 출현할 경우 뜻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셋째, 이 암기법은 도식을 활용한다. 도식은 사건 등을 표상하는 지식의 덩어리다. 우리는 흔히 ‘흥부와 놀부’하면 주걱과 박을 떠올린다. 주걱과 박은 ‘흥부와 놀부'라는 스토리(도식)의 일부분을 이루기 때문에, 이야기 제목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지만, 이 암기법을 통해 외운 단어들은 학생이 만들어 낸 ‘스토리'에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회상할 경우, 단어들이 실타래 따라오듯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암기법은 Salience를 활용한다. 주어진 단어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만들려면, 스토리가 다소 엉뚱하거나 창의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기억은 도식에 맞지 않거나 이상한 정보에 민감하다. 따라서 기발하거나 창의적인 스토리는 단어의 기억이 지속되도록 도와준다.


그 외에도 이 암기법은 깊이 처리 이론, 최근 대두 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빌린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지만 단점도 있다. 일단 학생에게 영어 작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에게 단어를 주고 작문을 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어려워할 것이다. 특히, 영어 실력이 부족한 중학생의 경우 실효성이 적을 수 있다.


또, 이 암기법으로 단어를 암기한 후에도 해당 단어를 다양한 지문에서 다시 접해봐야 한다. 단어는 맥락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지문에서 나올 경우 전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고, 따라서 뜻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암기 후에도 다양한 지문을 읽으면서 단어를 여러 번 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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