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법 학과를 다니던 시절 겪었던 일이다. 그 날 아침도 행정법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뛰어갔다. 거의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한꺼번에 떠드는 소리 때문에 강의실은 정신이 없었다. 다들 삼삼오오 그룹을 이루어서 떠들고 있었고, 나는 교수님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윽고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술렁이던 강의실은 이내 정리가 되었다. 떠드는 사람도,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교수님 말소리 외에는 침묵만이 있었다.

그런데 반시간이 경과할 때 쯤, 침묵을 깨고 들리는 소리가 하나 더 생겨났다. 누군가가 코를 골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들 이 코 고는 소리가 교수님의 귀에 들릴까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옆에 있는 누군가가 건드려서 깨우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도 옆에 없었다.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그 학생의 코 고는 소리는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강의실 맨 앞에까지 들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소리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학생이 자다가 깜짝 놀라서 깨는 바람에 사건이 급 마무리 되었다. 그제서야 모두들 교수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번 미소를 짓고는 강의에 집중했다. 나도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 학생의 코 고는 소리는 아주 잠깐 동안만 지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한 15분은 지속된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 시간의 주관적 경험을 왜곡시켰다고 생각한다. 강의시간은 조용해야 하고, 교수님 앞에서 졸다가 코까지 고는 것은 어찌됐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학생들이나 나는 교수님에게 이 상황이 발각될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자기 통제가 시간의 흐름에도 주의를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10분이라고 느꼈던 시간이 30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다행히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논문 하나가 있다.




출처: Psychothalamus

번역: 인지심리 매니아



자기통제와 시간의 흐름


아 인슈타인의 발견에 흥미를 가졌던 Kathleen Vohs와 Brandon Schmeichel은 자기 통제가 시간의 주관적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싶었다. "자기 통제는 보통 자신의 행동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도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라고 연구자는 설명했다. "이 모니터링은 자신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는 사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간 단히 말해서 '자기 통제(self-regulation)'는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간 판단에 관한 초기 연구 결과에 의하면, Tv를 시청하기전 자신이 보게 될 프로그램의 방영길이를 예측했던 집단은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방영길이를 더 길다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프로그램에 집중한 결과 시간의 흐름에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의식적이고 노력이 필요한 자기 통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끼게 할 것이다. 이 논문의 연구자들은 이 주장의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고 싶었다.





영화 보며 눈물 참기


실험 1에서 연구자들은 참가자에게 Terms of Endearment라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애정의 조건

감독
제임스 L. 브룩스
출연
셜리 맥클레인, 데브라 윙거, 잭 니콜슨, 대니 드비토, 제프 다니엘스, 존 리스고
개봉
198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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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죽어가는 한 여성이 자신의 자녀, 남편과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가자들 중 일부는 평상시 영화 보듯 이 영화를 관람한 반면, 다른 일부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또는 과장하며 관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조작은 다른 실험에서 참가자로 하여금 의식적 자기 통제를 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난 후 참가자들은 영화의 길이를 판단하게 된다. 실제 영화의 길이는 11분 23초였다.


자신의 감정을 강화하거나 억제했던 집단은 통제집단보다 영화 상영시간을 더 길다고 판단했다.




실험 2 또한 첫번째 실험과 유사했다. 다만 새로운 영화를 보여준 것이 바뀐 점이었다(Mondo Cane이라는 영화였는데 야생동물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 판단이 정말 자기 통제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또는 일반적 정보 처리의 결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재평가(reappraisal)조건을 추가해 봤다. 이 조건에 할당된 참가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냉정한 입장에서 관람하게 된다. 연구자는 "기존 연구들은 감정의 통제로 인한 영향(예를 들어 감정을 억제할 경우 기억이 감소되는 현상)이 재평가를 하는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참가자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영화의 길이를 판단하게 된다.



실험 결과 자기 통제가 필요없었던 통제집단과 재평가 집단과 달리, 억제 조건의 참가자가 영화길이를 길게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대본 연습은 책읽기 보다 오래 걸려?


실험 3에 서 참가자들은 다양한 직업과 관련된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 이 때 행동 통제 집단은 그 직업을 기술한 대로 '행동'을 해야 했다. 따라서 특정 직업이 행복하고, 웃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참가자들도 글을 읽는 동안 그 특징들을 행동으로 따라하는 것이다(논문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 역자 주). 다른 조건의 참가자는 아무 지시도 받지 않았다.


4 분 23초가 경과한 뒤 참가자들은 갑자기 질문 하나를 받게 된다. 그 질문은 질문을 받기 전까지 참가자가 느낀 실험의 경과시간을 묻는다. 질문이 있은 다음 실험이 계속 진행된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15분이 되는 시점에서 실험을 멈출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번 실험의 결과도 실험 1,2의 결과와 동일했다. 행동을 통제했던 그룹(직접 행동으로 모사했던 집단)의 사람들은 실험 시간이 길다고 판단했다. 이 주관적 판단은 실험을 지속시킨 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실험이 길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1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실험을 중지시켰다.





결론


이를 통해 연구자는 실험집단과 통제 능력을 연결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이 모형은 시간 지각이 중재변수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에 근거한다. 이 모형은 추후 실험에 의해 증거를 확보했다.

따 라서 4개의 실험을 통해 연구자는 사람의 시간 지각이 자기 통제에 필요한 자원의 고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정 인지적 통제가 개입될 때, 예를 들어 감정적 통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길다고 느낀다. 부담스럽거나 귀찮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아인슈타인의 발견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때, 매력적인 이성과 같이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자기 통제가 필요 없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Vohs, K., & Schmeichel, B. (2003). Self-regulation and extended now: Controlling the self alters the subjective experience of tim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 (2), 217-230 DOI: 10.1037/0022-3514.85.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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