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유령'
글 : 인지심리 매니아
최근 드라마에서는 옛 연인을 닮은 사람과 만나는 스토리가 유행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닥터 진'과 ‘유령'이다.
‘닥터 진’에서, 진혁(송승헌)은 우연히 조선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똑같인 생긴 여자(영래 아씨)를 발견한다. 진혁은 영래 아씨와 거리를 두려 하지만, 12회에서 아씨에게 마음이 있음을 솔직히 표현한다.
닥터 진
반면 ‘유령’은 닥터 진의 경우와 조금 다르다. 유강미(이연희)는 자신이 좋아하던 김우현(소지섭)과 똑같이 성형수술을 한 박기영(최다니엘)을 도와준다. 유강미는 그가 박기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김우현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8회 방송에서 박기영이 다른 여자와 키스하려 했다고 말하자, 유강미는 내심 질투한다.
(아래 동영상 2:20와 4:25)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과 닮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 폴 블룸의 연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현실 속 사람들은 자신의 옛 연인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폴 블룸(Paul Bloom)은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이며 발달심리학, 언어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이다. 그는 자신의 책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에서 인간이 본질주의자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물건에 관심을 가지거나 이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그 대상의 ‘본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겉모습만 같은 다른 대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사랑에도 본질주의가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잠깐 사랑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내게 특별한 그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 아무도 구별하지 못할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자.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유전자가 동일하고 부모도 같고 같은 집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일란성 쌍둥이를 떠올려보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특징에 끌렸다면 쌍둥이 형제에게도 똑같은 매력을 느껴야 한다. 1 흥미롭게도 쌍둥이와 결혼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혼한 배우자에게만 매력을 느끼지,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에게는 끌리지 않는다.” 2
인간의 본질주의는 아마도 타고나는 것 같다. 폴 블룸과 동료들이 2008년에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3을 살펴보자. 그들은 아이들이 아끼는 물건(엄마의 대리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곰인형이 있다)을 복제 장치라는 기계에 넣는다. 그리고 이 장치를 이용하면 원래 물건과 똑같이 생긴 물건을 복제할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기계에서 복제된 물건이 나온 다음, 연구자는 아이들에게 원래 물건과 복제된 물건 중 어떤 것을 가져갈지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원래 물건이 중간 대상이 아닌 경우 복제된 새 장난감을 가져간다는 응답이 많았다. 하지만 원래 물건이 중간 대상인 경우, 원래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 실험은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버리지 않은 이유는 그 물건이 가진 고유한 본질, 추억과 역사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본질이 복제된(즉 겉모습이 같은 ) 물건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복제된 물건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인간은 그 사람의 본질, 그 사람과 함께 겪었던 역사, 추억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본질은 고유하기 때문에 겉모습이 닮았다고 해서 본질도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옛 연인과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지라도 그가 옛 사람과 본질까지 동일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옛 연인과 닮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드라마에선 가능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드물 것 같다.
- Wright,L. 1997. Twins: and what they tell us about who we are. New York: Wiley. [본문으로]
-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133pp [본문으로]
- Bruce M. Hood, Paul Bloom, Children prefer certain individuals over perfect duplicates, Cognition, Volume 106, Issue 1, January 2008, Pages 455-462, ISSN 0010-0277, 10.1016/j.cognition.2007.01.0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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