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만이아니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피터 J. 리처슨 (이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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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인지심리 매니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위 문구는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중 일부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 문장을 처음 접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 하필 문화 강국인가? 군사 강국도 있고 경제 강국도 있는데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문화로 어떻게 강국이 되는 걸까

 하지만 문화가 무기나 돈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김구 선생의 판단은 옳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주장이 듣기 좋은 수식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터 J. 리처슨과 로버트 보이드가 쓴 책 유전자만이 아니다를 읽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문화는 한 집단의 생존을 결정지을 뿐 아니라, 인간의 유전자마저 바꿀 수 있다.

 이 책은 유전자와 문화가 공진화 한다는 이론에 입각하여 쓴 책이다. 이 관점은 스펙트럼 선상에서 심리학과 정반대의 극단을 차지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심리가 문화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는 흔히 유전자 또는 심리에 묶여있는 개로 비유된다. 문화는 가끔 인간 심리(또는 유전자)의 성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만약 벗어나려고 하면 심리가 통제하려 들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왜 오래 지속될 수 없었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의 심리가 이를 허락치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는 종족 번식의 강력한 심리 아래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문화가 인간의 심리 또는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문화를 통해 적응도를 높인다고 한다. 적응에 성공하면 그 세대의 후손들은 축적된 문화를 다시 계승하고 문화를 지속시킨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와 문화는 공진화한다. 목축업이 발달한 지역의 사람들이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성인기까지 유지하는 현상은 유전자와 문화가 공진화 함을 보여준다.

이 책은 문화의 역할을 진화적 관점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 역사적 사례나 인구학적 천이 등 실제 현상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주장한 가설들이 실험이나 실제 사례를 통해 검증된다면 더 없이 훌륭한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견해

이 책은 진화심리학이 아닌 또 다른 시각으로 진화 과정을 조망한다. 심리학은 문화가 인간 심리에 예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저자들도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인간은 문화를 받아들일 때 자신의 심리에 맞는 문화를 받아들인다. 저자들은 이를 편향된 전달이라고 부른다. 편향된 전달에는 순응 편향, 빈도 편향, 모델 편향이 있다. 각 편향들은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의 심리현상과 같은 맥락선 상에 있다. 하지만 문화는 편향의 힘을 압도해서 전달될 수 있다. 문화는 유전자 또는 인간 심리의 줄에 묶인 개가 아닐 수도 있다.

문화는 심리적 현상을 거스를 뿐 아니라 심리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문화가 인간의 인지 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2011/07/31 - [인지심리기사/지각] - 종교가 인지적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들을 볼 때마다, 어쩌면 문화가 심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처럼 어리석은 심리학도의 짧은 식견과 달리, 세상은 인간 심리만으로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으며 문화와 유전자, 심리의 공진화로 설명 가능한 복잡한 체계일지 모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양한 관점을 통해 인간 현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Posted by 인지심리학 매니아





성별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엄연히 구분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화 과정에서 학습된 것인가? 인종의 경우는 어떨까? 다른 인종은 생물학적으로 다른가? 아니면 다르다고 학습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다. 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덜 받아서 백지같은 아이들의 반응을 관찰한다면, 성별이나 인종의 차별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알 수 있을까?

Marjorie Rhodes와 Susan A. Gelman의 2010년도 논문은 어린 아이들이 사회적 범주(e.g. 성별이나 인종)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연구했다. 연구의 목적은 어린이가 사회적 범주를 절대적인 분류개념으로 인식하는지(남녀는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므로 명확하다), 아니면 가변적인 개념으로 인식하는지(남녀 구분은 사회맥락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알아보는 것이었다.



실험방법
실 험자는 아이들에게 Feppy라는 캐릭터를 소개해 준다. 이 캐릭터는 우리와 아주 다른 세계에서 왔으며, 따라서 그곳의 개념이나 분류체계는 우리와 매우 다르다고 설명해준다. 어린아이들의 할 일은 Feppy의 분류가 과연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실험자는 세 접시에 각각 다른 동물의 사진을 올려 놓는다. Feppy가 그 중 한 동물과 개념상 동일한 동물을 묶는다.



이 때 Feppy는 검은 라브라도와 고양이를 같은 동물이라고 묶는다. 실험자는 어린이에게 "Feppy의 말이 맞을 수도 있나요?"라고 묻는다. 어린이들은 틀렸거나 맞다고 대답할 수 있다.

참 가자의 응답을 다 받은 다음, 어린이들이 틀렸다고 한 경우를 1점, 맞다고 대답한 경우를 0점으로 처리해서 자료를 분석했다. 점수가 높을수록 어린이가 그 범주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객관적 기준이 있으니까 Feppy의 답이 틀렸다고 답했을 것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범주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Feppy의 답이 맞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객관적 분류 기준이 없는 것이다).



결과

어린 아이들은 성별이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페피의 말이 틀렸다고 한 경우가 전체 문제의 70~80%에 육박하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인종의 경우는 틀렸다고 응답한 확률이 30~5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생물학적으로 명확히 구분된다기 보다 다소 가변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태도가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소도시 지역의 어린이들(시골지역 어린이에 비해 자유주의적 분위기에서 성장한다)은 성장하면서 성별개념이 상대적이라고 학습한다는 것이다(확률이 .56, .42인 것을 보라). 또 시골 지역의 어린이들(보통 보수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한다)은 성장과정에서 인종이 생물학적인 구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확률이 .72 .70으로 높은 편이다).



결론
어린이들은 성별이 생물학적으로 명백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이는 진화적인 관점에서 성별을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직관적으로 구분해내는 능력을 타고 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 유아들은 어릴적부터 성별에 따라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나 옷이 확연히 구분된다. 반면 청소년들에게는 성별이 상대적일 수 있음을 학습시킨다. 따라서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분류능력이라기 보다 여전히 문화의 산물일 수도 있다.
반면 어린이의 인종에 대한 분류기준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환영할 만 하다. 아시아인과 백인, 흑인은 백지상태인 어린아이에게 동등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보수적인 문화 환경이 인종을 생물학적으로 섞일 수 없는 절대적 기준으로 바꾸어놓는다면, 인종 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생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인간의 성별/인종 구분이 타고나는 것일지라도, 문화적 영향에 따라 그것을 심화시키거나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reference
Marjorie Rhodes, Susan A. Gelman, A developmental examination of the conceptual structure of animal, artifact, and human social categories across two cultural contexts, Cognitive Psycholog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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