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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기사/의사결정/추론

[책 리뷰]탁월한 결정의 비밀

탁월한 결정의 비밀
작가
조나 레러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09.10.20

 

 


Posted by 인지심리 매니아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 친구가 수능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상해. 처음에 쓴 답이 미심쩍어서 고쳐쓰면 꼭 틀린단 말이야. 처음에 쓴 답이 오히려 신중하게 생각할 때보다 정답인 경우가 많더라고."

여 러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전략이 더 현명한 방법일지 궁리해 봤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도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 처음에 생각 난 답과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쳐 쓴 답 중 정답이 될 확률은 어느 쪽이 높을까?


10년이 지난 다음 우연히 조나 레러의 '탁월한 결정의 비밀'을 읽다가 실마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옛 친구들은 이미 대학에 진학한 상태다. 그래도 이와 동일한 궁금증을 갖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도파민을 통한 '경험적 학습'이 직관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예상이 적중했을 때 도파민이 왕성해지고 반대로 무언가 예상과 다를 때는 negative 신호가 주어져서 일련의 학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된 지식은 우리의 직관을 이루게 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발휘된다.

이 직관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인 사고의 수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고등학교 친구는 당시 엄청난 양의 공부를 소화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문제집을 푸는 과정에서 친구는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를 기억 어딘가에 저장했을 것이다(정답이 맞았을 때 느끼는 도파민 분출과 틀렸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그리고 같은 문제가 나왔을 때 친구의 직관은 신속하게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의식이 이런 gut feeling을 방해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바로 그 점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때로는 전전두피질이 변연계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전전두피질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해답을 내놓고도 다시 의식을 써서 답을 망친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의사결정에서 이성과 감정이 담당하는 역할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심리학이나 신경과학 연구결과들을 다루고 있지만 내용이 재미있어서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의사결정은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의사결정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의사결정의 종류에 따라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고민한다. 마트에서 라면을 살 때는 뇌의 어떤 부위를 사용해야 하는가? 수능 시험에 정답을 고칠까 말까 고민할 때는? 이 여자랑 결혼을 할지 말지는?

완 벽한 결론은 없지만, 저자는 어느 정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위에서 든 친구의 사례처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이 활용될 때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직관(감정)을 믿어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반면, 새로운 상황이거나 우리의 작업기억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주어진 상황이라면 이성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래도 의사결정은 여전히 불확실한 영역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쉽다. 결국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개의 도구를 어떻게 적절히 사용하는지가 핵심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플라톤이 말한 마부와 말을 화해시켜서 의사결정 너머에 있는 저 이데아에 도착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